대화단절

침묵의 나라로 떠나던 날

by임경주




그날도 창문 밖으로 눈이 엄청 내리던 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오랜만에 집에 오니 너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오이나물을 잔뜩 해두셨다. 진짜 말 섞기 싫었는데, 밥 먹다가 편집자랑 통화를 오래 했었나 어쨌나 아무튼 울 아부지랑은 말만 섞고 나면 땅을 치고 후회를 하니까 네네하고 계속 피했는데 자꾸 물어보고 확인하셔서, 지금 쓰고 있는 바카라 이야기를 하다가 자꾸 역사에도 없는 거짓깔 어쩌고 하셔서 내가 확 도발을 했는데.


조선 500년 역사로 넘어가기 시작해서, 사림이 등장하게 된 그 역사적 배경과 은원과 관련해 고려 말 충신이었던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이 삼은 중에 성종 때부터 등용되기 시작한 그 재야사류 그러니까 사림파의 진짜 뿌리가 도대체 누구인지, 어딘지에 대해 내가 아는, 하지만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신나게 떠벌리다가 -아니 계속 물어보시니까, 나도 이제 그만 글 써야 해서 대가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현대사로 넘어와 이승만을 거쳐 박정희 죽음까지 내 가치관과 이념까지 섞어 막 퍼부어 버렸는데 그때 대화가 딱 단절되었다.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니가 그 시대를 살아봤냐?

딱 이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뇨? 하고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담배가 술보다 더 맛나더라. 담배 연기가 솜털 같은 눈 사이로 그리도 힘차게 쭉쭉 뻗어나갈 수가 있는지 입을 오므려 도너츠도 만들고 참 맛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대체 이게 뭔지 싶었다. 물어보시지나 말든지. 니가 그 시대를 살아 봤냐고? 안 살아보면 말도 못 하나? 자기 돈으로 바카라 내는 쓰레기 같은 판타지나 쓰는 아들이 -내가 아무리 푼돈을 벌어도 인세를 매달 받는 프로작가이거늘, 이건 아마도 가실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아무리 말해도 사람은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역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셨을까? 옹졸함의 극치다. 내가 어떻게 무슨 대화를 더 이어 나갈 수가 있을까. 밖에서 고민을 엄청하다가, 엄마 미안해 인사하고 밥도 안 먹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 침묵의 나라로 떠나버린 날이다. 그날 진짜 눈이 엄청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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