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딱 네 번 이상
잘 지내시나요, 그곳은 어떠신지요. 꿈은 사납지 않나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단지는 완전 촌 동네인데, 처음에 1200 가구가 세워졌고 그 뒤로 총 3천 가구가 2차, 3차에 걸쳐 세워졌어요. 말 그대로 저수지를 끼고 있는 시골 아파트인 거죠. 전 여기에 뿌리를 박았네요. 하나뿐인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답니다. 나랑 엄마 가고 나면 이 집이랑 저 집이랑(아, 어쩌다 보니 집이 하나 또 생겼네요.) 너 추억 간직할 거만 빼고 사람 부르라고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짐을 알아서 다 정리해서 가져가니까. 저도 그랬거든요.
내가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의 친할아버지 집도 그렇게 정리했다. 붓이랑 인주랑 벼루는 차마 못 버리겠더라. 그러니까, 너도 내 짐 정리하면서 내가 소중히 여겼던 바카라이나 수기 기록들, 이건 내가 네 할아버지가 아무리 미워도 묵향은 꼭 챙긴 것처럼 너도 꼭 네가 가져가야 마음 편해지는 게 있겠다면, 그게 무명작가가 남긴 향기라면, 그걸 챙기고 아니면 다 버려라. 유언인 거다.
주변에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들을 멀리해야 할 병균덩어리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대했던 치기 어린 30대 시절이 있었다. 글을 위해 일부러 죄를 짓고 깜빵 생활도 해보고 싶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저수지 옆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산바카라길에 난 분명 반딧불이를 보았다. 근데, 이 말을 동네 사람 그 누구에게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잘못 본 거라고. 요즘 세상에 반딧불이가 어디 있냐고. 난 분명 보았는데. 넌 반딧불이를 모른다고.
진짜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내 머리 위에서 날아다닌다. 손만 뻗어도 잡을 수가 있는 거리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서로 비행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똥구멍 아래쪽에서 불가능한 형광빛을 내뿜는 게 너무 신비하다.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 거짓말처럼 빛나는 사람이다. 많이 좋아했다. 수컷이 날면서 빛을 깜빡이면 풀숲에 앉은 암컷이 응답하는 식이란다. 종마다 깜빡이는 리듬이 달라서, 그 빛이 일종의 말이고 이름표라고.
동네 사람들이 구경 나왔다. 반딧불이를 신기해한다. 내가 했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난 이제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선다. 이 사람 없고 어둡고 습한 길이야 말로, 나에게 정해진 운명 같은 길일지도 모른다. 힘들고 슬프고, 고독하고 외로워도 무언가를 찾아내 전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뒤돌아 반딧불이를 본다. 내 말, 이름표가 전해질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듣고 있다면 말하고 싶다.
그래도 날 알아주었고, 조금은 알아주잖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허락해 주시면, 아이유가 했던 말처럼 딱 네번 이상 잘할게요. 떠나고 싶지 않네요. 잃고 싶지도 않고요. 지금 제 눈앞의 반딧불이는 진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