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의 휴일

헌사, 수고하셨습니다.

by임경주




젠장, 휴일에 이게 뭐람. 이 넓은 하늘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꽉 막혔다. 조종간을 당겨 수직상승한다. 이카루스의 후예인가. 저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날아간다. 기체가 고도를 높일수록 떨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무리다. 양쪽날개가 떨어져 나가 버릴 만큼 몹시도 불안하다. 뒤틀리는 순간 끝장이다. 두렵다.


“개새끼들! 어디 계속 쫓아와 봐!”


살고 싶어 두려운 게 아니라 살려야 하기에 두려운 거였다. 사람은 못 믿어도 기계는 믿는다. 엔진출력을 최대로 높인다. 기관총을 난사하며 꼬리까지 따라붙은 적기의 조종사는 나를 잡았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딸깍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나타샤공주의 비명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고도계의 숫자가 한계치에 도달했다. 아직은 아니다. 조종간을 끝까지 당긴 상태로 상승각을 유지한다. 엔진은 울부짖지만 추진력은 급속도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 치렀다. 하늘에서 함께 한 내 분신과도 같은 전투기 허리케인을 믿어야 한다. 조종간을 풀었다. 시야가 뒤집힌다. 하늘과 지상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다 들린다. 저 미친 새끼가! 뒤집어진 기체의 배가 하늘을 보는 순간, 총알이 날아온다. 섬광탄처럼 불이 붙은 총알이 평행선을 그리며 머리 아래로 지나갔다. 공주의 비명소리가 또 한 번 터졌다. 뒤집힌 상태로 적기의 진행방향에서 벗어난다. 적기 두 대가 이미 스쳐 지나가 점으로 보인다. 이때다. 조종간을 다시 잡아당긴다. 터보 스위치를 올렸다. 개조한 엔진이 불을 내뿜으며 포효했고, 기체의 속도가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내가 적기의 꼬리를 향한다. 하수들. 어떤 놈부터 해치워줄까.


“교전하지 말라. 자네의 임무는 나타샤공주를 태우고 하바나공항에 도착하는 거야.”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을 거두고 사선으로 방향을 틀어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무인도가 보여 착륙한다.


“우리 살았어요?”

“네.”

“휴.”

“내리세요.”


공주가 허리케인 뒷좌석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바동거렸다. 도와주고 싶지만 비행사 따위가 어디 감히 공주님의 신체 어느 곳이라도 잡겠는가.


“뭐해요? 좀 잡아줘요.”

“아? 네.”


나는 공주의 손을 잡아주고 조심히 내려오는 걸 확인한 뒤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타샤공주란다. 이 공주는 왜 자기 아버지를 배신한 걸까?


“여긴 어디죠?”

“이름 모를 섬입니다.”

“좀 쉬었다 가시게요?”

“아니요.”


쉬긴 개뿔, 하바나공항이 지척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바나 대사관에게 짐짝처럼 공주를 내던져주고 바이바이하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면 맥주를 마시면서 휴일을 만끽할 테다.


“뭘 찾으세요?”

“위치추적기요.”

“네?”

“공주님이 믿는 자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네요. 어쩐지 그렇게 따돌려도 귀신처럼 나타나더라 했어.”


기체 꼬리 날개 쪽에서 위치추적기를 찾아냈다. 발로 밟아 부수고도 분이 안 풀려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럼 이제 안전한가요?”

“아니요. 그건 좀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허리케인을 홀로 두고 숲 속으로 숨었다. 추적기의 신호가 이어져 있었다면 곧 적들이 나타날 텐데 엔진소리는커녕 새소리만 들려왔다.


“근데 있잖습니까.”

“네?”

“진짜 죽이려고 덤비던데요.”

“….”

“제가 뭐 지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제3국의 사정을 딱히 잘 모르지만 왜 망명을 요청하셨는지.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저 정치엔 일도 관심 없습니다.”

“아버지가 악인이어서요.”

“아니, 얼마나 못됐기에.”

“비행사님께서 지금 상상하시는 거 100배요.”

“와우. 마약? 알고 보니 카르텔 최종보스 뭐 그런 건가요?”

“네.”

“그 나라 국민들은 자유도 없고 폐쇄된 생활에…”

“네 착취만 당하고 있고요.”

“그럼 혹시 인신매매도?”

“맞아요.”

“와. 어쩐지. 대단한 분이시네요.”

“누가요? 아버지요? 저요?”

“두 분 다?”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런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지금 가지고 있나요? 제가 살아보니까, 증거 없으면 모든 게 다 소용없더라고요. 하물며 국제적인 문젠데.”

“네. 있습니다. 하바나에 도착하면 국제기구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될 겁니다.”

“어쩐지.”

“왜요?”

“교전금지, 대화금지. 적기가 나타나면 도망만 쳐라. 왜 그런가 했는데 이젠 알겠네요. 내가 한 발이라도 쏘면 강대국의 횡포니 어쩌니 정치적 명분을 주는 거니까요. 공주님 훌륭한 분이시네.”

“훌륭하긴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잖아요. 모른 척.”

“어떻게 모른 척 하나요?”

“할 수도 있죠. 저 같음 그럴 겁니다.”

“똑같은 인간이네요.”

“네? 제가요? 왜요?”

“더 말 섞고 싶지 않네요.”

“소신인가요?”

“그럴지도.”

“전 애초에 소신 따윈 없고 그저 명령에만 복종하는 군인입니다. 잔인한 말이지만 공주님 잡혀가면 공개처형당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사람이 목숨을 걸 때에는 좀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또 뭔 죄라고 휴일에 목숨을 걸고 비행을 해야 하나요,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신중한 사람은 그만큼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죠. 오직 의미 있는 건 행동뿐입니다.”

“아니, 지금 공주님 배신자가 위치추적기 달아서 죽을 뻔했잖아요.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지적질인가요? 그만하시죠.”

“맞는 말을 하는 것뿐입니다.”

“근데 말에 가시가 있네요. 왜 잔뜩 화가 나셨어요?”

“그게… 오늘은 휴일이라.”

“네, 거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적들이 안 나타나는 걸 보니 안전한 거 같네요. 출발하시죠.”

“그러시죠.”


공주가 뒷좌석에 오르는 걸 도와주려는데 아까 내릴 때와는 다르게 손을 거부했다. 맘 상했나 보다. 아니면 나도 똑같은 악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는 자기 아버지와 같은 괴물로 보이나 보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고요한 하늘을 날아 하바나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주를 반기는 건 하바나의 대사관이 아니라 공주의 아버지였다. 나는 악마의 손에 의해 지옥으로 다시 잡혀 들어가는 공주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기 딸인데 공개처형을 하겠어. 하지만 내가 지금 상상하는 거 100배의 악당이라니…


“아니, 잠깐만요. 여기 하바나 대사 없나요? 저분 망명을 요청한 분이라서요.”

“어이 비행사. 넌 할 일 끝났으면 꺼져.”

“아, 네.”


하바나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데 딱 보니 공주의 아버지가 어떻게 매수했는지는 몰라도 국제관계에서 이미 우위를 차지했다. 사령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명령을 내린 거다. 나쁜 놈의 새끼들. 그래, 더 이상 내 알바 아니다. 허리케인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돌아가면 휴일 맥주나 실컷 즐기는 거지 뭐. 하지만 공주가 뒤를 돌아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뒤돌아 냅다 뛴다. 어쩌려고 저럴까. 나도 모르게 내렸다. 나도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공주가 내게 오는 걸 막는 놈들을 한 놈 한 놈 면상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공주를 뒷좌석에 태우고 나도 올라탔다. 그렇게 하바나공항을 탈출했다.


“어디로 가나요.”

“몰라요.”

“대바카라도 없이 목숨을 거나요. 신중하지 못하네요.”

“그러게요.”

“고마워요.”

“뭐가요.”

“목숨을 걸고 절 살려주셔서요.”

“그 인사는 나중에 받겠습니다.”


내 뒤로 적기 다섯 대가 쫓아오고 있었다. 교전이다. 방향을 선회해 적기 한대의 꼬리에 따라붙었다. 하수들. 표적을 잡은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허리케인에 장착된 기관총이 불을 내뿜었다. 적기 다섯 대를 순식간에 격추시키고 유유히 하늘을 날아오른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오늘은 휴일이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인생, 곡예나 부리자. 파란색 연막탄을 터트린다. 8자를 옆으로 눕힌 것처럼 궤적을 그린다. 빨간색 연막탄을 터트리고 루프에 이어 롤까지 공중곡예를 펼친다. 뒤돌아 공주의 얼굴을 보고 싶다. 어떤 표정일까.


파란 하늘, 허리케인이 나선을 그리며 하얀 뭉게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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