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실패한 인생

by임경주


고등학교 때 장국영을 그렇게도 좋아했었다. 어쩌면 그때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지금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퇴근길에 알배추가 너무 먹고 싶어 마트에 들렀다. 짜실한 거 두 개 포장에 6천 얼마여서 망설이다가 다시 내려놓았는데 열무 한단이 2천4백 원이어서 좋았다, 이거다 싶었다. 네 뿌리? 다섯 뿌리?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에 네 뿌리를 씻어서 1시간 동안 소금에 절이고 밥한수저랑 양파 반 개 사과 반 개 고추랑 갈아서 멸치액젓이랑 고춧가루 팍팍치고 양념해서 김치를 담갔다. 집사람이 뒤에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껴안고 만지고 생 난리를 쳐서 확 떼버리고 여자로 살아갈까 얘기했더니 너무 늦었단다. 집사람은 내가 농담하는 줄로만 아는데 난 진심이었다.


어차피 슬롯생활도 끝나간다. 아들도 잘 컸고, 남편이어야 했고, 아버지여야 했던, 남자로 기능해야 할 어떤 의무나 바카라임도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고, 남은 일이라면 글 쓰는 거 하나인데, 여자로 변신해 글을 쓰면 뭔가 더 좋고 보다 나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거다. 어차피 실패한 인생, 이제는 나도 그 누구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내 글은 폭발력이 없다. 초년기 작품은 심장을 찌르고 들어오는 악플에 쓰레기 취급을 받았는데 어찌 보면 그것도 관심이다.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얼의 향기를 네이버 론칭 목적으로 쓰고 있는데 틀려 먹은 것 같다. 문피아에 연재를 하는데 완전 무관심이다. 이런 글이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장르시장도 출판이 이렇게 어렵다. 여전히 꿈은 포기하지 못해 영화 시나리오도 하나 준비하고 있다. 기회라면 기회일까 어떻게 대형제작사 대표와 연결이 되긴 했는데 한번 퇴짜를 맞았고 두 번째도 이딴 식의 글이면 세 번 째는 아예 검토조차 없다고 해서 쫄보가 되어 신중의 신중을 기하고 있지만 어째 머리가 굳어 단 한 글자도 못쓰겠다. 시나리오가 나와봐야 어쩌면 이것도 영, 글쎄올시다.


2013년, 14년 두 해 연속 기적처럼 공모전에서 2천만 원짜리 상을 받고 각종 영화사와 제작사대표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 미팅을 하고 그럴 때는 내 글쓰기 인생이 다 끝난 줄로만 알았었다. 각본 임경주. 크레딧에 내 이름 석자 오르는 걸 그렇게도 극장에서 보고 싶어 몸이 부서져라 시나리오를 쓰고 또 고쳐 쓰고 또 썼는데 결국엔 자빠졌다. 뉴, 쇼박, 롯데, 시제이 등등 투자사의 투자를 받으려면 시나리오 검토 항목이 있는데 참신한가, 대중적인가, 주인공은 매력적인가, 딜레마는 스토리의 엔진으로 기능하는가 그런 항목에서 커트라인을 넘어야 한다. 삼 년 동안 죽기 살기로 총 열한 번의 퇴고를 해서 제작사대표가 확인하고 투자사에 보냈는데 매번 그 합격 선 언저리에도 가질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대표는 최민식이나 이병헌 급의 배우만 붙으면 판이 뒤집어진다고 겁나 열심히 배우섭외에 노력했지만 결국엔 그 누구도 붙지 않았고 자빠졌다. 그 뒤로 벌써 몇십 년이 흘렀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장르 판에서만 겨우 글쓰기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 불씨도 곧 소멸하기 일보직전이다. 글이란 놈은 도대체가 쓰면 쓸수록 어렵기만 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갈수록 남성호르몬은 줄어들고 여성호르몬이 급격하게 분출되고 있는 기분이다. 못하는 요리지만 주방이 좋다. 글 쓰고 있을 때가 가장 맘이 편하다. 돈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뭐, 펑펑 쓸 돈도 없을뿐더러 어찌 보면 내 삶이 소비지향적인 삶은 아닌 거 하나만큼은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한 때는 권투도 참 열심히 했고, 어느 헬창 못지않게 무거운 쇳덩이를 잘도 들었는데 이제는 턱걸이 하나도 못하겠다. 이럴 바에야 더 늦기 전에 여자로 살아가볼까 싶은데, 누나들에게 다시 언니야 하고 부르면 우리 누나들은 어떤 기분일까. 우리 막둥이가 상처가 많아서 결국 나이 먹고 돌아버렸다고 할 것 같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난 누나들을 똑같이 언니라고 불렀었다.


이런 얘기들을 집사람에게 쭉 했다. 밥 먹으면서. 집사람은 다 좋고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사는데 고추는 떼지 마란다. 왜? 돈이 많이 든단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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