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쓰면 뭐 하지
집사람이 요즘 명절 대목이라고 엄청 바쁘다. 많이 힘들어한다. 젊었을 땐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집에만 있으라고 했다. 난 내 아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절대로 기관 안 보내고 남 손에 안 키울 거라고. 바카라을 엄청 사서 함께 읽었다. 수천만 원이 뭐야. 진짜 없는 살림에 엄청 썼다. 거기에 거의 합숙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회사 퇴근하고 2시간, 1시간 반 쪼개자면서 아이랑 함께 바카라을 읽고 놀았고 아이가 잠들면 글을 썼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3시간 이상 자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마통이 늘어나도 집사람은 내 뜻에 따라주었다. 결과도 좋지만 그 과정이 정말 행복했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천문학적인 숫자인 고액 사교육을 하지 않았어도, 결국엔 이미 정해진 것처럼 시골 아파트 동네에서 기적처럼 개천에 용이 날 수도 있다는 경사가 일어났다. 내 돈으로 떡을 해서 돌리는 일이 그렇게도 좋더라. 집사람은 아들을 서울로 학교를 보내고도, 난 일 안 하고 계속 아들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마음이 바뀌었다. 갑자기 내 일을 너무 하고 싶다고, 수중에 1억은 꼭 쥐어야겠단다. 그래서 어디 갈 곳도 없고 모택배회사에 송장 붙이는 파트제 근무로 일을 시작했는데 쥐꼬리만 한 월급에도 좋아라 하며 감사해하고 어느새 5년이 넘어간다.
명절 대목에는 많이 힘들어한다. 나도 바짝 긴장해서 퇴근하기 전에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데, 집사람은 돈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냉장고를 잘 파야 한다. 근데 오늘은 진짜 냉동실이고 뭐고 팔 게 없다. 아니, 사실은 있는데 지겹다. 그래서 한숨이 나오는데, 그냥 갑자기 서럽다. 왜 이렇게 살까. 왜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냉동실에 있는 저것들을 만질 거였으면 집사람 출근 시키고 그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다. 내가 아무리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여성 호르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지만 이건 아닌 거다. 첨으로 짜증이 난다. 여태 글 쓰다가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진짜 한숨만 푹푹 나온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이따가 집사람 오면 앞에 딱 앉혀두고 말할 거다. 나 이제 이렇게 안 살 거야. 냉장고 파는 것도 지겹고 돈을 못쓰게 하면서 은근히 맛있는 저녁 기대하는 당신 비위 맞추는 이 짓도 싫고. 막 따질 거다. 양말 집어던지면서. 그러면 울 집사람은 틀림없이 이 말을 할 거다. 오토바이는 절대 안 돼. 오토바이 말고,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말해봐. 글 쓸 때가 젤로 맘 편하고 행복하다며.
그러게. 글 안 쓰면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