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하여
철학적인 질문이 사람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일 때가 있다. 내가 좀 말이 많다. 말 많은 인간은 실속이 없다. 사람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얼의 향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그냥 이렇게 향기처럼 살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고, 두 번 째는 내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나처럼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지지도 않고 맛있는 거 해서 입에 넣어주면 그냥 맛있게만 먹어주는 그런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조건이 없는, 바라는 것도 없는, 얼과 향기와 같은 캐릭터가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이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난 내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일류대 가기를 원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으니까. 부모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게 과연 부모의 순수한 마음일까, 욕심일까? 아니면 사랑을 베푸는 어떤 조건일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고 잘해주고 싶다면 거기엔 정말, 내 주장처럼 아무런 조건이 없을까? 그걸 나도 정말 모르겠다. 물론 날 좋게 봐달라는 마음이 있는 것도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은 아닐 것이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라고 본다. 그냥 내가 해준 거, 받은 거 기억을 못 하는 거다.
우리가 만약, 평소에 즐겨 먹는 닭이나 돼지에게도 기억이 있어서 섭취하기 전 그 기억을 확인해야 한다면 먹을 수 있을까? 우리처럼 똑같이 새끼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돼지와 그 새끼 돼지를 구워 먹을 수 있을까? 그 기억을 보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어야만 얼마든지 구워 먹고 삶아 먹을 수 있다. 조건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있고, 되는 게 있다. 그렇다면, 조건 없는 사랑이 정말 존재할까? 내 마음은 정말 그런데, 진짜 바라는 거 하나도 없는데, 이것도 착각일까? 억울하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난 정말 뭘 바라는 걸까.
글에서나 다 도구이고 재료이지 진짜 인간관계에서는 이 사람이 잘되길, 안 다치길, 오래 곁에 있길… 이런 바람인데 이런 생각 자체가 위험한 걸까.
걱정된다. 얼이랑 향기는 언제까지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맛있는 밥이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