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우상
난 어린 시절 분명 살아 계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엄마와 네 명의 누나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엄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누나들에게 받은 사랑은 또 달랐다. 누나들은 우리 막둥이, 막둥이 하며 다들 날 굉장히 예뻐해 주었고 옷 입는 거부터 시작해 겨울이 되면 입술과 손등이 부르트고 갈라지는 것을 해결해 주었고 손에 박힌 가시를 옹기종기 모여 서로 의논하면서 빼주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누나들 덕분에 옷도 참 예쁘게 입고 다녔던 것 같다. 남들이 누나 있는 인간 진짜 부러워하고도 남을 정도로, 누나들은 날 엄청 예뻐해 주었고 공부까지도 잘 챙겨 주었던 걸 보면 진짜 어지간히도 내가 예뻤나 보다. 나도 그런 누나들을 좋아했고 잘 따랐다. 심부름도 잘했고, 답정너인 누나들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어 잘 어울려, 어 누나는 그게 젤 나은 것 같아. 하며 딱 듣고 싶어 하고 좋아할 만한 대답만 골라 말해주는 정말 영특하고 착하고 순한 동생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 같다. 오죽하면 나도 똑같이 언니라고 불렀는데,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막내누나가 너 이제부터는 우리한테 언니라고 하면 학교 가서 놀림받으니까 안되고 누나라고 불러야 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라는 말이 그렇게도 입에 안 붙었었다. 나는 왜 누나라고 해야 해? 하니까 넌 우리처럼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서 그런단다. 그걸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엄청 가난했는데 그 가난을 몰랐다. 정말 행복했다. 마음은 부유했다. 가끔 아버지가 집에 오면 그렇게도 싫었다. 강아지도 안다. 툭 치는 거랑 예뻐서 건드는 거랑. 아버지가 집에 오면 밖으로만 돌았는데 냇가에서 불을 피웠고, 친구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도 불을 피웠다.
성장하면서 수많은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히어로보다는 히로인에게 집중하게 되었는데 누나들과 함께 배 깔고 누워 보았던 캔디와 불새의 늪에서 불새처럼 타올랐던 죠엔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막내딸 레 샤르휘나에게 푹 빠졌었다. 왜 그랬냐면 샤르휘나가 그냥 멋있었다. 더 나아가 미야자키 히야오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히로인은 내 상상력을 폭발시켰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는 영원한 우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난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만든 이야기를 통해, 또는 그 안에서 어떤 특별한 히로인을 창조하고 싶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용감하고, 따뜻하고, 진취적이고,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워 나가는 그런 멋진 히로인. 난 내 이야기 속에 이런 히로인을 만들어 나간다. 살면서 수많은 히로인을 만났다. 더 멋진 히로인을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나의 마지막 히로인은 1Q84의 아오마메다.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났었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난 그렇게 믿고 싶었었다. 어쩌면 나만의 판타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 그때가 그립다. 정말 그립다. 단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