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왜?

일자의 타자화

by임경주



먼저 난 나다. 거짓말도 잘한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도 따라올 처벌이 두려워 바카라임을 회피한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타인의 자율성과 신뢰를 무시하는 기만과 교활함이 하나의 도구가 되는 순간이다. 진실이 드러났을 땐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고 관계가 파괴되는 핵심 원인이 된다. 가장 흔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넌 너다. 거짓말을 못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얘기한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 파괴력을 줄이거나 막기 위해 뒤로 감춰두고 본다. 잔인한 것으로부터 눈을 가려준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다는 거짓말을 선택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지만, 두려움이 깔린 인간적인 모순에서 출발된다. 사람에 따라 다른 새하얀 거짓말이다.


나와 너의, 악의적인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국 거짓말은 다 나쁜 것일까.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악이라고 규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경했지? 그러면 자기는 살면서 거짓말을 단 한 번도 안 했다는 말일까? 아니다. 이건 다른 얘기다. 칸트도 거짓말은 했겠지. 그런데 왜? 선의의 거짓말도 악이라는 걸까. 두려움이 없는 걸까? 그래서 인간적인 모순으로 인해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딜레마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걸까? 그럴 리가. 위대한 철학자가. 그게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이 우선이라는 말일까? 왜 선의의 거짓말이 악이라는 걸까. 어쨌든 그랬나 보다. 칸트는.


근데 솔직히, 이거 아닐까? 칸트도 인간이잖아.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을 타자로 만들어 원칙 뒤에 숨기도 하거든. 그래서 일자를 지키려다 자기도 모르게 타자화되어 그대로 밀고 나간 거 아닐까? 위대한 철학자니까. 쉿, 남들 보는 눈이 있잖아. 인간 칸트와 철학자 칸트를 분리해 놓고, 철학자 칸트가 인간 칸트를 통제하게 만든 것 아니냐, 하는 것이지. 철학자의 원칙은 과연 진정한 도덕일까? 아니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가장 고결한 형태의 회피일까. 갑자기 니체가 생각나네.


니체도 나왔겠다. 자, 이제 솔직해져 볼까? 살인자 문 앞의 딜레마에서 칸트가 한 말은 사실 거짓말보다는, 인과의 사슬에서 과연 나는 어디까지 바카라임질 것인가, 이게 핵심인 거지. 내가 한 말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그 바카라임까지 내가 져야 하는가. 그래서 칸트는 두려움 때문에 원칙을 버리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 테고. 내가 여태 주장한 도덕성을 위한 은폐와는 좀 다르지.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해서 미안해. 심심해서 그래…

근데 이거 또 따져보면 두려움의 배제나 은폐나 모순이라기보단 이중구조 아닌가? 이러다 날 새겠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니체도 당장 소환해 볼까? 그러면 다음 수순은 또 뻔해. 이 모든 도덕이야말로 결국엔 삶을 부정하는 자의 자기 방어 아니냐. 하는 계보학적 의심인 거지. 그러면 싹 다 거짓말? 도대체 진실은 뭐지? 그건 길가에 설치된 외줄과도 같은 것. 올라타라고 있는 게 아니라 걸려 넘어지라고. 그래서 이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니체 자신도 같은 잣대를 피해가진 못할 것 같은데. 어디 한번 계속 파볼까? 아니, 이제 그만. 피곤해. 그렇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일자여. 부르는 순간 타자가 되어버리는 일자여. 네가 정의라면 제발 거짓말은 하지 마라. 그게 선의든 악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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