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과연 있긴 할까?
다 알면서 지금까지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아왔다. 내 인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걸. 새처럼 가지가 흔들리는데 맞춰서 일일이 고개를 흔들며 살아가야만 하는 슬픈 인생이란 것까지도. 매우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면서 적당한 타협을 위해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을 잃어갔고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않아 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야 할 시기까지도 이미 놓쳤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용기를 되찾는 것은 순수의 회복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는 건, 어쩌면 너무 늦었고 이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어른은 과거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그만의 작은 방을 하나 마련하겠지만 어떤 어른은 버리고 비우는 게 더 중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는 다르다. 어느 쪽이 옳은지 사실 난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아무리 비뚤어지고 못난 어른들이라고 해도 그 어른들의 문제에 아이인 내가 끼어들어선 안된다는 것, 모든 어른들에게는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많이 아프고 슬픈 상태라는 것까지도.
중요한 것은 의문을 품었거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말고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나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여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의 난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어른이 되어 있다. 그리고 글 뒤에 숨어 지낸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그저 모든 게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다. 나는 그 밑에서 잘게 부서지는 모래와도 같은 존재. 운명을 바꾸는 힘이 존재한다면 그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밀리고 밀려 위태로운 자리, 벼랑 끝처럼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극복한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뚫고 들어가도 도달할 수 없는, 닿을 듯 말 듯 그저 가만히 있지만 절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저 미지의 그 무엇을 내 억울해서라도 기필코 건드려봐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내 열손가락 끝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줄 날카로운 칼을 닮은 펜이 필요하다. 운명을 바꾸는 힘이 존재한다면 그건 정말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지금 힘차게 써내려 가고 있는 내 손끝의 펜과 너의 고요한 응원을 닮았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