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원래 작가라는 직업은 거절당하는 직업이다. 어느 출판사든 제작사든, 누구 하나 쉽게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 주질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글을 인정해 주고 좋아해 준다면, 그건 실로 나에게 일어나기 힘든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이란 걸 알아야 한다.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 글을 알아주고 좋아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인성이 꽝이거나, 인성이 꽝인 천재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뭐, 천재는 다 용서가 되니까.
공모전은 나에게 정해진 목숨이 100년이라면 거기서 10년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되는 게 이상한 게 공모전이다. 안 되는 게 맞다. 기적처럼 붙어 상을 받는다면, 정말 나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기획사와 제작사로부터 영화든 드라마든 영상제작 제안이 들어온다면 인생에 다시없을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보좌관이 당선된 2014년에서 18년까지. 난 나에게 찾아온 이 엄청난 기회를 결국 붙잡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드라마로 나와 있더라. 더 알아보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3년 동안 갈아엎고 또 갈아엎었다. 영화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작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고, 대표작은 거의 국민영화급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영화다. 그 회사 대표가 날 찾아왔고 3년을 함께 한 것이다. 제법 탄탄한 회사에 충무로에서도 힘이 있는 제작사 대표였기에 믿고 올인했었다. 하지만 결국엔 그 어느 곳에서도 투자를 받지 못했다. 뉴, 쇼박스, 시제이, 롯데 등등 투자사는 시나리오와 어떤 대형배우가 붙었느냐에 투자를 결정짓는다고 하는데 난 양쪽 다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고, 그 때나 지금이나 글 쓰는 게 발전이 하나도 없어서, 나 스스로 참 창피해서 그런다.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어느새 뒤돌아보니, 울 아들 그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그런 시간이 흘렀다. 군대도 다녀오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 많이 늙었다. 아들은 약속을 지켰는데, 난 여전히 아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요즘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역시나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 하며 10년 목숨을 담보로 또 도전했다. 그래도 나름 예선은 잘 통과했는데 개별연락이 없는 걸 보니, 이번에도 꽝이다. 예선도 오르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망했다. 그러면 그렇지. 글은 쓸수록 어렵다. 기회는 갈수록 사라진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조급하지 않다는 것.
근데,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다고. 조용하던 지인이, 애 셋을 키우며 오직 생존을 위해 글을 죽기 살기로 쓰고 있는 참 좋은 동생이자 내 글쓰기 스승인데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형, 지금 뭐 계약된 거 있냐고. 없어. 이럴 땐 있어도 없다. 낼 뭐 하냐고, 당장 만나자고. 천안에서 젤 비싼 거 얻어먹을 거라나. 그래서 봉담으로 모시러 간다고 했다.
왕사남의 대성공으로 충무로에 돈이 돌고 여기저기 제작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단다. 그래서 나에게도 기회가 다시 찾아오나 보다. 집사람이 너무 좋아하고 기대하는데, 사실 난 아직도 자신이 없다. 내 자력으로 공모전 당선작을 통해 그 유명한 제작사 대표가 붙었는데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었다. 이건 트라우마다. 두렵다. 이제는 그 기회가 지인찬스로 찾아왔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는데,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여전히 멀었을까. 다 닥치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다시 미친 듯이 글만 쓰고 살고 싶은 마음 하나는 확실하다. 이건 정말 기대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