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집

그 집에 사는 예쁜 딸, 부디 행복하시길

by임경주




잘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팔뚝을 깨물었다. 아프거나 불쾌하진 않았지만 나름 놀라서 누군지 얼굴을 보려는데 온통 새카만 게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거 지금 꿈이구나. 깨자.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어서 가위가 곧 시작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역시나 가위에 눌렸고,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려고 애썼다. 비명을 내지르며 일어난 건 아니다. 그냥 느낌이 왔다. 팔뚝을 물고 있는 이 누군가가 더 심하게 물진 않을 것 같았다. 내 의지로 가위를 이겨낸 것인지, 아니면 그쪽이 날 놓아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전화기를 켜보니 새벽 3시였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잘까. 이왕 눈 뜬 거 컴터 앞으로 갔다. 멍 때리기 시작한다. 결국, 지금까지 네 시간 동안 단 한 글자도 못썼다. 이런 날이 가끔 있다. 웹소설연재작가는 하루 5천 자 이상은 무조건 소화해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글이 너무 안 써지니 산바카라을 나갔다. 발길은 나도 모르게, 내가 한 때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예쁜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면, 두 번 다시 찾아갈 일이 없는 집이었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쁜 꽃들이 가득한 화단 주변으로 잡초들이 자라 있었다. 흉물스러운 정도는 아니었고, 요 며칠 관리를 안 했나 싶은 정도였다.


이 집에는 정말 예쁜 딸이 사는데, 전에 사귀었던 남자와 다시 만나게 될 거 같아서 이참에 그냥 잘 만나 결혼까지 갔으면 했었다. 혹시라도 청첩장이 날아오면 국수는 먹으러 가지 않아도 봉투는 두둑하게 전하고 싶었다. 열린 대문 사이로 슬쩍 들여다본 집 분위기는 결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 예쁜 딸이, 창문이 닫힌 방 안에서 혼자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멜로디는 장난스러운데, 가사가 매우 슬픈 노래였다.


웅. 하며 집사람이 기지개를 켠다. 나 엄청 잘 잤으니 밥 주라는 소리다. 어쩜 저렇게도 잘 잘까. 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아침을 뭘로 준비해야 하나. 날이 덥고 입맛이 없을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주특기, 냉장고를 뒤지고 파본다. 우리 집엔 정말 먹을 게 없다. 뒤지고 또 뒤지다 보니 꽃게 얼린 게 두 마리 있어서 일단 물에 담가 해동시키고, 단호박을 깨끗이 씻어 둔다. 오늘의 요리는 막내누나가 알려준 단호박 꽃게탕. 양파간장소스를 만들어 볼까 해서 시골에서 올라온 양파를 깐다. 이거 맵다. 막내누나처럼 칼질을 잘하기 위해 연습을 해본다. 최대한 얇게, 빨리 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초집중한다. 너무 숙였나 보다. 눈을 너무 크게 떴나 보다. 양파 매운 게 훅 올라와 눈이 맵다. 아, 젠장. 고개를 들어 눈을 깜박거려도 소용없다. 눈물이 난다. 이러다 말겠지. 곧 매운 게 사라지고 눈물도 멈추겠지.


갑자기 꿈속에서 내 팔뚝을 깨물어 가위에 눌리게 했던 누군가가 생각났다. 그 예쁜 집도 생각났다. 창문을 닫아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던 예쁜 딸도 생각났다. 슬픈 가사가 떠오른다. 양파 매운 게 오래간다. 오늘은 하루 종일 단 한 글자도 못 쓸 거 같다.


밥을 잘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양파 매운 게 가시질 않아 또 눈물이 난다. 대체, 아침부터 뭔 일일까. 주바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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