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나비

강철의 갑옷, 그 뻔뻔함

by임경주




오랜만에 면도를 했다. 면도날을 새것으로 교체해서 그런지 매끄럽다. 자칫, 베일 것도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는데, 어라? 이 짜식이 웃고 있네? 조울증이라도 걸린 걸까? 어제부터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특별한 일은 없다. 며칠 전만 해도 예기치 못했던 큰 충격으로 인해 뭘 잘 먹지도 못했는데,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회복이 되었나 보다. 입맛이 살아났고 소주가 다시 달다. 뭘 먹어도 맛있다. 일부러 소주를 많이 마셔보았는데, 다음날 거뜬하다. 세잔만 들어가도 그대로 토했던 며칠 전에 비하면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아니면 이게 당연한 것인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참 좋다. 이 상태가 쭉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내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어느 심리학자처럼 스스로를 연구해 보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아동유괴살인마가 아이를 잃은 전도연 앞에서 그분께 용서를 받았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 너무나도 평온하다고. 난 용서를 받았으니, 됐다고. 아이를 잃은 슬픔과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도연은 이게 무슨 개 ㅈ같은 소린가? 몹시 당황스럽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 살인마는 끝내 평온하다. 나 역시도 너무 평안하고 좋다. 행복하다.


예기치 못했던 조카의 죽음도, 누군가에게 했던 모진 말들로 인해 불편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다 정리되나 보다. 스스로의 체념이나, 할 만큼 했다는 식의 어떤 자기 위안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느낌이다. 그 어떤 강력한 포식자의 날카로운 이빨에도 뚫리지 않는, 강철의 갑옷을 입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젠 날지 못해 어이하나. 훨훨, 맘껏 날아다니다가 어느 예쁜 집 앞에 멈추어 서서 그 안을 기웃거렸던 일도 이젠 다 끝난 거 같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뻔뻔함이 이렇게나 사람을 평화롭게 만들어 줄 수가 있다니. 더 나아가 기분이 이토록 좋아질 수 있다니. 그래서 뻔뻔한 거였구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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