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와의 약속 part1

새의 선물 135p

by임경주



오랜만에 늦잠을 다 잤다. 늦잠이라고 해봐야 두 시간 더 자서 6시에 일어났다. 항상 새벽 4시가 되면 저절로 잠이 깨서 더 잠들지 못해 컴터부터 켜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두 시간 더 자고 일어나 새의 선물부터 펼쳐 들었다.


처음 선물 받았을 때, 이 바카라은 나도 이 친구 나이 때 읽은 바카라이라 반갑기도 했었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었다.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겉모습에 집착했던 것 같다. 어떤 지적허영심에 사로 잡혀 바카라을 대충 이것저것 허겁지겁 많이 읽던 시기라 잘 이해도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지금, 내 나름 어떤 노력을 하며 글을 쓰고 살아왔는데, 이 바카라을 다시 보는 난 어떤 발전이 있긴 한 걸까? 여전히 그때와 같다면 난 그동안 무얼 하고 산 걸까? 이런 생각들이 교차하면서 바카라을 다시 펼쳐 들었다.


읽다 보니 그래도 내가 뒤로 가진 않고 앞으로 걸어온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빛나는 시기가 있다.

그 빛나는 시기가 지나면 한 때 삶을 완성했을지라도 퇴화되고 그때 보이는 세상은 또 다르다. 새의 선물은 열두 살에 이미 삶을 완성했다는 어린 진희를 통한, 또는 진희가 보는 어른들의 허무와 모순 그리고 통찰과 냉소가 가득한 글이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서 보면 그저 모든 게 연민이다. 그렇게 보인다. 다들.

읽다 보니 이 친구가 해둔 첫 번째 바카라갈피에 도착했다. 이 친구는 이 페이지의 어떤 장면 또는 어떤 문장과 대사에서 마음이 움직여 표식을 남겼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본다.


135p


찾은 것 같다. 이 부분이 걸린다. 누가 더 정통인지. 나 역시 형만 예뻐하고 열등한 유전자로 낙인찍어버린 외가를, 엄마를 쏙 빼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움만 받았었다. 더 웃긴 건,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외가가 훨씬 더 잘 살고 우리 임 씨보다 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집안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한 집안에서 누가 더 사랑받는가를 둘러싼 은밀한 서열 의식 그리고 그 사랑의 뿌리가 사실은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바카라임감이나 의무였을지도 모른다는 진희의 자기 성찰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나도 그토록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샜다.


미운 정 고운 정도 이 친구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 같다. 진희가 자신을 할머니의 적자로, 이모를 서자로 비유하며 정통성과 우월감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이 부분. 할머니가 이모를 나무라면서도 결국 응석을 받아주는 장면 그리고 “미친년”이라 욕하면서도 혼잣말로 “미운 놈이 생겨나갖고……“ 라며 정을 드러내는 장면까지.


좋아하는 감정은 늘 고운 정에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없다는 진희의 통찰이 새롭다. 이 친구는 이걸 진희와 함께 통찰한 걸까? 난 어린 시절에 이 부분을 그냥 지나쳤던 것 같은데.


이건 그냥 내 느낌인데, 이 친구는 이 장면에서 어쩌면 어떤 사무친 게 있을 것 같다. 아, 그냥 느낌이다. 가족 안에서의 사랑이 늘 다정하고 예쁜 모습으로만 오지 않는다는 것. 야단맞고 부딪히고 미운 오리새끼처럼 미운 정이 쌓이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라는 걸 이 친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한 친구라는 게 느껴진다. 아니, 단정보다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바카라갈피로 표식을 남겼을 터. 임작가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보실까. 어떤 말을 나누게 될까.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말을 나누다 보면 어떤 너그러움이 전해져 오는 친구다. 그래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들이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맞을 거라고 본다.




울 아들은 혼자커서 이런 맘 모를 거다. 엄마아빠 사랑을 몽땅 다 독차지 했으니. 그러니 짜식아 더 잘해줘라. 바카라갈피가 앞으로 12개 남았다. 12개씩이나?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진짜다. 재밌고 나름 잊고 있었던 통찰을 느끼게 해 주어 고맙다. 다음 지면에서 다루게 될 바카라갈피를 미리 살짝 살펴보니 149p인데, 아. 한 문장에서 맘이 아려온다.


아줌마는 갈 곳이 있는 게 아니었다.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 문장이 덜컥 걸린다.

다음 글은 언제 남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는 넘기지 않을 것이야. 에험. 갑자기 그 친구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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