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그냥 가만히 있어라

by임경주




어제 아들이랑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집에 다녀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너무 반가웠다. 그 친구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귀한 사람이라서, 이왕 만난 거 내가 뭘 더 어떻게 더 잘해주고 싶었다. 그 친구는 작가인 나를 참 좋아해 주고 첫 번째 만났을 때 새의 선물을 선물해 주며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었다. 좋아하는 페이지들을 깔끔하게 바카라갈피를 해두었는데 아직까지도 살펴보지 못하고 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라 배웅을 나갔는데, 바카라 언제 보실 거냐고 해서 뜨끔했다. 바카라은 항상 옆에 끼고 있는데, 내 글 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를 둘러댔다. 빠른 시일 내에 보고 글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진짜로.

새의 선물 전문에 보면 그런 말이 있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아주 작은, 사소한 호의라도 그것을 받는 상대방은 일생의 빛을 꺼버리고 어두운 감옥 속으로 숨어버릴 수가 있다.


선의라고 해서 그게 다 상대방에게 선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은 아빠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란다. 가만히 있어라. 이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난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뭘 해줄까? 집에 오면 뭐 먹고 싶어? 오기로 한 며칠 전부터 자꾸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내가 해주는 누룽지 백숙이면 너무 감사하단다.


앞치마를 입는다. 뭐든 불 조절이 생명이다. 생닭은 깨끗하게 씻고 우유에 담가둔다. 원두커피 원샷에 마늘 대추 구기자 양파 대파를 넣고 찹쌀을 두 컵 미리 부풀려 압력 밥솥에 찌면 맛있는 누룽지 백숙이 된다. 이때 불이 너무 세면 탄다. 참 맛있게 먹어주니 고마울 뿐이다. 먹는 걸 가만히 지켜보니 손으로 잡고 뜯으면 되는데 아직은 자리가 어려운지 그게 여의치 않나 보다. 그래서 비닐장갑 끼고 살을 다 분해해 주었다. 다리살을 그 친구 접시에 많이 건네주었다. 감사하다며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 슬쩍슬쩍 보다가 취기가 오르니 대놓고 예뻐 죽겠다고 그랬다.




아들이 한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게 최선이고 가장 잘해주는 거라는 말.

어쩌면 처음부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지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 좋았으리라. 뭘 더 잘해주고 챙겨줘 보겠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가고 그랬을까? 저 거대한 해도, 아주 사소한 호의에도 그게 부담스러워 일생의 빛을 꺼버리고 어두운 감옥 속으로 숨어버리는데.


그래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키는 작은데 그냥 멀리서 응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어쩌면 모든 관계가 처음부터, 이게 옳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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