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카피능력을 얻었다 3

# 3화 무한의 능력

by임경주

자경황후의 거처. 심연당.

딱 봐도 없어 보이는 원숭이새끼 한 마리가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자경황후의 목에서 놀고 있다. 자경황후가 18세 때 소환한 오른팔이다. 특이한 건 머리에 금강원을 착용했다.

“3년? 이년이 미쳤구나. 도대체 이 어미를 뭐로 보는 거지? 내 이년을 오늘은 반드시 만조백관 앞에서 석고대죄하게 만들고 말테야. 그래, 그 기한은 3년으로 하자. 눈이오나 비가 오나 편전 앞에 엎드려 싹싹 빌면 다시는 기어오르지 않겠지.”

“어미를 부도덕한 여자에 남편을 죽인 여자로 의심하고 이미 검찰국에서 종료한 사건을 다시 파헤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효에 불충이로다. 석고대죄감이지. 암.”

영친왕이 벌거벗은 몸이다. 상복 상의를 찾아 주섬주섬 입었다.

“그렇지요?”

“허나.”

“네?”

“진영이를 이길 수 있겠소?”

“그래서 다 수를 써놓았지요. 호호호.”

자경황후가 왼손에 낀 호박보석반지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살살 어루만지더니 호박보석을 눌렀다. 어디선가 삐! 하는 소음이 귀를 파고 들어왔다.

영친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약하구려. 그럼, 잘해보시오. 내 기대하겠소.”




가영의 침소.

상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다.

육해공 산해진미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검식을 끝냈습니다. 폐하.”

“그래. 물러가라.”

상선이 물러났다.

“한잔 받아.”

소백이 두 손으로 넙죽 술을 받았다.

“사실 검식도 이제부터는 오른팔 네가 해야 해.”

“제가요? 저 그러다 혹시라도 독 먹고 죽으면요.”

묻고 있지만 말 뒤에 물음표가 없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넌 그러라고 있는 존재니까.”

“아니요. 슬프지 않겠어요?”

이게 진짜 질문이다. 슬프지 않겠냐고.

가영이 술잔을 입 앞에서 멈추고는 소백을 보았다.

“생각해볼 문제네.”

“네.”

“많이 먹어. 오늘 하루 피곤했을 텐데 말이야.”

“맛있네요.”

“먹으면서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앞으로 나 대신 많은 일을 하게 될 거야. 거의 위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

“폐하는요?”

“난 진영이 살리는데 내 인생 모든 걸 다 바칠 거야. 어딘가에는 분명 방법이 있다고 봐. 난 그걸 찾아낼 거고.”

“에이, 제가 폐하대신 왕 노릇하는 거 가만있을까요? 뒤에 서 있는 건 몰라도 전면에 나서면 문제가 많죠.”

“뭐 당장 그렇게 하겠어. 서서히 바꿔나가는 거지...”

가영이 말을 하다가 목이 결려 자꾸 목을 요리조리 비튼다.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더니 담 왔네. 어의 들라하라.”

가영의 말 한마디에 어의가 들어와 즉석에서 침을 놓을 준비와 함께 목과 어깨를 지압한다.

어의가 침을 한 방 놓았다. 왜 저기에 놓는 걸까? 순간 보인다. 소백이 딱 보니 어의의 침술도 이해가 간다. 인체에는 경락이라고 하는 기와 혈이 흐르는 통로가 있다. 그것이 눈에 보였다. 지금 가영이 막힌 곳은 독맥의 방광경처럼 보이지만 실상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아니다.

“어허? 잠깐. 거기 아니지?”

“뭐라?”

어의가 깜짝 놀라 침을 떨어뜨렸다.

“여기지.”

소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영의 뒤로 돌아갔다. 침구에서 새로운 침을 빼들어 담경에 찔렀다. 어의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기 아닌데. 그리고 내가 어읜데 나 지금 뭐하고 있지?

“뭐야?”

가영이 고개를 획 돌려 소백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감히 침을 함부로 찔러?

“아하하. 여기 아닌가?”

“이 짜식이 보자보자하니까...”

“맞을 텐데...”

“어...”

“왜요?”

“어. 가셔. 바로 가셔. 풀렸어. 좋아.”

“네? 정말입니까?”

어의가 믿을 수가 없어 물었다.

“어. 방금 한 방에 풀렸어. 와, 우리 오른팔이 못하는 게 없네? 어의는 그만 물러가라. 오른팔은 아까 어의가 했던 것처럼 다리 좀 주물러봐라. 다리가 그냥 퉁퉁 부었어. 여기저기 얼마나 돌아다니나.”

“싫은데요.”

“뭐?”

“알았어요.”

소백이 가영의 다리 한쪽을 대충대충 주물렀다. 가영은 그 자세로 앉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똑바로 안 해? 장난 하냐?”

“네.”

[“언니. 너무 웃겨! 아하하하!”]

“오구 우리 강아지. 재밌어?”

[“응. 언니. 너무 재밌어.”]

진영이 지켜보고 있었다.

“동생분께서 뭐라셔요?”

“신경 꺼.”

“네.”

가영은 기분이 좋아져 깔깔깔 거리기도 했고 소백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궁금해져 한마디씩 묻기도 했다.

“근데 너 솔직히 말해봐.”

“네?”

“너 내 동생 병도 카피했지?”

“아니요? 그러면 저도 지금 무균실로 들어가야겠죠.”

“흠... 그래?”

가영이 취해서 살짝 떠봤는데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백을 위아래로 쳐다보는 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압을 꽤 잘한다. 어의보다 더 잘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오른팔일줄 알았는데 스페셜이다.

슬슬 졸려온다. 가영이 배를 깔고 드러누웠다.

“종아리 좀 해봐. 너무 시원하네. 졸음이 그냥 막 쏟아져.”

“양치 안하세요?”

“아, 몰라.”

“양치까지는 안 시키네요.”

“고민 중이야. 누가 닦아주는 것도 귀찮아.”

“네. 그럼 그냥 주무세요. 푹 주무세요.”

가영이 아 좋아 하며 막 잠이 든 그 때였다.

“자경황후 납시오.”

가영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달콤했던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뭐? 아, 이런 18! 왜 하필 지금인데?”

가영이 들라하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자경황후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안으로 들어왔다.

소백이 가영의 종아리를 마사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넌 뭐니?”

“폐하 오른팔인데요.”

“아, 그러니? 인사해라. 내 오른팔이란다.”

원숭이가 꽥꽥 거렸다.

“어, 안녕.”

소백이 손을 흔들었다. 머리의 금강원을 보는 바로 그 때다.

훅!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소백의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뭐지?’

귀가 간질간질했다. 뭐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뭘까. 귀를 털어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 야심한 시간에 무슨 일이시온지요.”

[“언니. 모든 예의를 다해 말해야해. 말꼬투리 잡히면 안 돼. 담판을 지으러 온 거야. 어미와 선황에 대한 불효 불충을 밀고 나가 언니를 만조백관 앞에서 석고대죄하게 만들 작정인거야.”]

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바로 그 때다. 자경황후의 곡이 시작되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가며 귀신들린 사람처럼 곡을 해댔다. 아이고, 아이고.

“도대체 폐하는 이 어미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더 이상 살지를 못하겠습니다! 검찰국에서 이미 종결한 사건을 이 어미가 아비를 죽였다고 다시 파헤치질 않나!”

“아이고, 어머니. 그거는 검찰국에서 한 번 확인해보라고 해서요.”

“그것이 아니잖소! 매일 같이 허구한 날 입만 열면 죽겠다고! 나 더 살고 싶지 않다고! 선황께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그러시는데 제가 그러면 어떻게 대답하고 어떻게 해야 했어야 맞습니까? 눈만 뜨면 죽겠다고! 밥 먹다가도 죽을 거라고! 대체 이 어미는 뭘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그래서 언제 죽을 거냐고 물어본 게 그리도 큰 죄입니까? 이미 검찰국에서 아무런 죄도 없다지 않습니까?”

가영이 대답을 망설인다. 진영의 말을 먼저 들어야했다. 하지만 삐! 하는 소음이 가영의 귀를 찌르고 들어왔다. 통신망이 깨졌다. 진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영도 눈앞의 모든 모니터가 꺼져버렸다.

가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경황후가 손가락의 호박보석반지를 만지는 순간을 간파한 것이다.

씩 웃는 저 간사하고도 비열한 웃음.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흔들다가 바닥에 찍어버리고 싶어졌다.

“아빠를 단 한순간이라도 사랑했나요?”

가영이 목구멍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겨우 집어삼켰다.

“네, 폐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제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하고 또 사랑했습니다.”

거짓말.

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걸려든다. 싸움에서 지는 거다.

“거...”

“네? 뭐라고요?”

자경황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영이 이성을 잃어간다. 말려든다. 판단력이 흐려진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르르 떨린다. 말해버리자. 뒷감당은 어떻게 될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 이 사악한 여자야! 소리질러버리자! 부모를 믿지 못해 의심하는 건 크나큰 불효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다.

“거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리 못됐소?”

“...”

“...”

“엄마라는 사람이 딸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럴수록 더 지켜야할 예의가 있는 법인데 지금 그쪽이 하는 행동은 예의라곤 전혀 없고 아예 싸가지 까지도 밥 말아 드셨구려.”

“너... 뭐, 뭐야?”

“폐하의 오른팔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그래서 뭐냐고!”

“아니 남편이 마음의 병을 얻어 매일같이 죽을 결심만 하고 있다면 언제 죽을 지를 물어볼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더듬어주고 살아갈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게 아녀자의 도리 아니오? 아니, 어떻게 힘들어하는 사람 옆에서 그렇게도 모질게 더 빨리 죽으라고 부채질을 한단 말이오? 참으로 못됐소.”

“...”

“...”

통신망이 다시 살아났다.

진영이 놀란 눈으로 다시 밝아진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해본다.

자경황후가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고는 부르르 떨고 있다. 그 손가락의 끝은 소백을 향하고 있었다.

“너....”

“예?”

“너...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아, 네.”

자경황후가 가영을 노려보는데 가영이 그만 풋, 하고 웃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경황후가 뒷걸음질을 친다. 도망치기 급급해보였다. 하지만 도망치지 못한다. 소백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자경황후는 지금 이 시간 부로 만조백관 앞에 나아가 석고 대죄하시오! 선황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 바카라임과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뉘우칠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자리를 지키시오. 물은 허락하겠소. 앞으로 내 모든 능력을 다해 그대가 선황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실을 밝혀내고 입증해낼 것이니 그대는 재수사를 받아야 할 것이오. 알겠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욕을 내뱉을 줄 알았는데 자경황후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백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심인술. 언령계 마법이었다. 흑마법 중의 하나로 말 자체의 힘에 의해 상대의 감정이 무너진다. 마음에 도장이 찍혀버리는 것이다. 이 도장이 찍혀버리면 평생을 자기 생각으로 알고 살아간다.

자경황후가 선황에게 걸었던 심인술을 소백이 똑같이 걸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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