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관하여

다들 오해하는, 그래서 시행착오

by임경주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인데 그게 참 신기한 게, 소설은 작가가 하는 말 또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작가가 아닌, 등장 캐릭터들이 스스로 하는 말과 이야기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지? 내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말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게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캐릭터가 생명을 얻으면 소설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알아서 말을 하고 사건을 일으키거나 갈등하고 또 그것을 해결해 나간다. 나머지는 작가의 등뼈와 엉덩이 힘이다. 그걸로 버텨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머리를 믿으면 안 된다. 뜨거운 가슴도 금물이다. 공감보다는 가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조율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자칫, 캐릭터에 휩쓸려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가 감정에 복받쳐 울어 버리는, 뛰어난 가수가 아마추어도 하지 않는 삼류 같은 실수를 하는 모양새로 이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는 공감보다는 가늠이 중요하다. 공감은 알겠는데, 가늠이 뭐냐고 물으면 여기 허락된 지면이 짧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세계의 신이다. 여기에는 하나님도 내 소설의 도구이고 부처님도 소재일 뿐이다. 그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죽음을 직접 겪어보고 말했을까? 다들 엉터리라고 생각하고 니체든, 칸트든 소설을 쓰고 있는, 그 세계의 창조자인 그대에게는 동급도 아닌 그저 단순한 소재에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위대한 철학이 무용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도구와 소재로 사용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의 철학과 사상을 수박 겉핥는 것처럼 대충 알고 도구로 사용하면 대번에 무식한 티가 나고, 없어 보이는 싼 티가 난다는 것이다. 작가라면 정말 제대로 알고 덤벼야 한다. 노력했는데도 거기까지 라면, 걱정 마라. 당신은 어쨌든 지금 신이고, 당신이 창조한 내 새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작가는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소중한 자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 어디서든 받아 적고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게 소설이다. 물론 다른 형태의 소설도 있다. 하지만 이 기본이 무시되는 형태는 아니다. 오히려 이 기본 위에 더 발전되고 쌓인 형태이다. 근데 정말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엉덩이의 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설은 대충 쓰고 자리를 뜰 생각부터 하고 있다면 애초에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줄줄 늘어놓는 것보다 단 몇 글자라도 좋다. 분량이 문제 되는 건 어떤 공모전이라든지 형태를 요구하는 쪽으로 매우 특정적이다. 짧은 글이라도 그 안에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고, 창조한 캐릭터의 말에 얼마나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읽어보면 딱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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