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먼 훗날 우리

by임경주



요즘엔 뭐든 여유가 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뭘 하면 분명 여유가 있다. 그동안 왜 쫓겨 왔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20대였을 것이다. 어떤 성공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남자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거 하나도 없이, 아무리 거시기 두쪽만 가지고 인생 살아도, 정말 열심히 살면 남자나이 50부터는 그 인생이 뒤바뀌고 꽃이 핀다고. 활짝 핀다고. 그 사람이 왜 그런지 나름 자기식대로 계산과 연구를 해봤는데 이 슬롯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나 어쩐다나. 아무튼 난 말도 안 되는, 전혀 근거 없는 그 말을 믿고 살아왔고 실제로도 그렇게 꽃이 피었다. 나름 활짝 피었다.


여유 있다. 내 수준에서는 풍요롭다. 나와 가까운, 내 주변인들이 날 다 부러워한다. 나름 잘 살고 있긴 하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힘들고 슬픈 일이 많았는데 그때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지금 잘 생각해 보면 지적허영심이었다. 내 글쓰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축복이면서도 저주였다. 좋을 땐 좋았지만 고생을 너무했다. 글은 내 수명을 단축시켰다. 건강도 망쳤다. 그리고 이제는 날 집어삼키고 있다.


어디 한심한 그저 소비적인 청춘은 아니었나 보다. 난 지금도, 여전히 생산적인 사람이다. 돈이 되든 말든 일단은 뭔가를 생산해 내고 본다. 그러다 보면 뭐가 하나 걸려 돈이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소비지향적인 사람이 있고, 생산지향적인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든, 자기 인생이니 누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딱히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남일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 뭐가 옳고 그른지, 뭐가 더 의미 있는 삶인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어느 삶이든 당사자에게는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겠지. 그러니까 그러고 살겠지.


그런데 앞으로 그리 멀지 않은 어떤 날, 내가 내 손주를 품에 안고 할아버지가 예전에 얼마나 잘 나가고 멋있었는지 아냐? 그때 사진 좀 볼까? 하는 것보다는 이 할아버지 지금 멀쩡해 보여도 나름 글 쓰느라 고생 좀 했다고 말하고 싶다. 돈 쓸 시간이 없었다고. 그렇게 살아와서 또 그렇게 살고 있어서 지금이 있다고.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진자는 과연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