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공기
추운 겨울이었다. 난 연탄을 꺼뜨리는 법이 없다. 내 방은 항상 따뜻하다. 그래서 영숙이가 좋아한다. 고시원은 아니다. 자취방인데, 다리를 쭉 펴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개가 짖는다. 영숙이다. 무슨 일인지 영숙이가 먼저 도착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내가 널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아무리 동네에서 같이 컸다지만 영숙이는 내가 남자로 보이지도 않나 보다.
아 따뜻해. 발 좀 저리 해봐. 근데 뭐야? 뭐 하는 건데?
글 써.
오, 작가님. 역시 넌 다른 남자들이랑 좀 달라.
내가?
응.
뭔 소리야? 뭐가 달라?
몰라.
뭐야.
그냥 넌…
뭐래.
근데 말자 이 가시나는 온다니? 만다니?
오고 있겠지.
야. 경주야.
왜?
아니다.
말해.
아냐.
뭐야…
저기… 말자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알아. 포크레인.
어. 포크레인. 너 진짜 말자 좋아해? 솔직히 말해봐.
뭔 소리를 듣고 싶은 건데?
그렇잖아.
뭐가?
말자 이 가시나 서울 정리하고 내려온 거 포크레인 때문이지 너 때문에 아냐.
알아.
알긴 개뿔.
안다고. 나도 돈 엄청 벌고 싶어.
그러면 일을 해야지.
아씨,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왜 화를 내?
계속 긁잖아. 너나 잘해.
이 씨. 야! 너 말자 어떻게 할 거야? 말 나온 김에 말 좀 해보자.
뭘 어떻게 해? 포크레인 좋아함 담서.
너 진짜 못됐다.
아니? 나보고 어떡하라고?
너 부산은 왜 갔어? 말해봐. 너 진짜 소율이랑 헤어진 거 맞아?
뭔 상관이야. 너나 말자 속 썩이지 마.
내가 뭘?
됐어.
말해봐? 왜 말을 하다 말아?
에씨, 그 택시기사 놈의 새끼는 왜 계속 만나는 건데?
어? 어떻게 알어?
영숙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랄. 저번에 손잡고 들어가는 거 다 봤어. 그때 말자 전화기박스 뒤에 숨어서 진짜 펑펑 울더라. 나 진짜 사람이 그렇게 우는 거 첨 봤어. 진짜 너나 잘해.
돈 받아야 하잖아.
미친. 손잡고 있는 거 딱 보니까 얼굴이 활짝 폈든만. 넌 니가 아깝지도 않냐? 아니? 도대체 애 셋 달린 유부남 새끼가 뭐가 좋아서 계속 만나는 건데? 내가 진짜 어이가 없는 게 그 새끼 너한테 돈 빌려가고 달라면 때리기까지 한다며?
누가 그래?
누구긴 누구야?
그래서.
뭐가 그래서?
니가 뭔 상관인데?
그러니까 너도 뭔 상관인데?
야! 너 소율이랑 끝났어? 안 끝났어?
뭔 상관이야? 너야말로 택시기사 만나기 전에 만났던 놈 정리했어? 안 했어?
나쁜 새끼. 넌 나한테 못 되게 구는 놈들보다 더 나쁜 새끼야.
와… 이건 또 뭔 소리래? 너나 말자 속 썩이지 마.
니가 그랬다며? 평생 사랑하고 살자고. 근데 너 하는 건 뭔데? 부산이나 찾아가고! 말자 내 친구야!
누가 아니래?
그니까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아, 됐어. 아우 씨! 소율이랑 그렇게 된 것도 다…!
뭐?
아, 됐어.
뭐가 돼?
됐다고.
알았어. 평생 그렇게 살아라.
하… 넌 정말 날 눈곱만큼이라도 좋아하냐?
한숨 섞인 뒤의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컹. 영숙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가 짖지 않는 걸 보니 말자다.
왔어?
말자가 대답도 없이 내 목부터 끌어안는다. 찬바람이 느껴지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 뭘 아무것도 먹지 않았나 보다. 어떤 음식 냄새도 나지 않는 게. 그저 시린 겨울의 찬바람 냄새만.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냐.
그때, 꽉 안아주었어야 했다.
난 영숙이 인기척을 신경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