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20대의 기록

겨울 공기

by임경주




추운 겨울이었다. 난 연탄을 꺼뜨리는 법이 없다. 내 방은 항상 따뜻하다. 그래서 영숙이가 좋아한다. 고시원은 아니다. 자취방인데, 다리를 쭉 펴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개가 짖는다. 영숙이다. 무슨 일인지 영숙이가 먼저 도착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내가 널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그랬던 것 같다.

아무리 동네에서 같이 컸다지만 영숙이는 내가 남자로 보이지도 않나 보다.


아 따뜻해. 발 좀 저리 해봐. 근데 뭐야? 뭐 하는 건데?


글 써.


오, 작가님. 역시 넌 다른 남자들이랑 좀 달라.


내가?


응.


뭔 소리야? 뭐가 달라?


몰라.


뭐야.


그냥 넌…


뭐래.


근데 말자 이 가시나는 온다니? 만다니?


오고 있겠지.


야. 경주야.


왜?


아니다.


말해.


아냐.


뭐야…


저기… 말자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알아. 포크레인.


어. 포크레인. 너 진짜 말자 좋아해? 솔직히 말해봐.


뭔 소리를 듣고 싶은 건데?


그렇잖아.


뭐가?


말자 이 가시나 서울 정리하고 내려온 거 포크레인 때문이지 너 때문에 아냐.


알아.


알긴 개뿔.


안다고. 나도 돈 엄청 벌고 싶어.


그러면 일을 해야지.


아씨,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왜 화를 내?


계속 긁잖아. 너나 잘해.


이 씨. 야! 너 말자 어떻게 할 거야? 말 나온 김에 말 좀 해보자.


뭘 어떻게 해? 포크레인 좋아함 담서.


너 진짜 못됐다.


아니? 나보고 어떡하라고?


너 부산은 왜 갔어? 말해봐. 너 진짜 소율이랑 헤어진 거 맞아?


뭔 상관이야. 너나 말자 속 썩이지 마.


내가 뭘?


됐어.


말해봐? 왜 말을 하다 말아?


에씨, 그 택시기사 놈의 새끼는 왜 계속 만나는 건데?


어? 어떻게 알어?


영숙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랄. 저번에 손잡고 들어가는 거 다 봤어. 그때 말자 전화기박스 뒤에 숨어서 진짜 펑펑 울더라. 나 진짜 사람이 그렇게 우는 거 첨 봤어. 진짜 너나 잘해.


돈 받아야 하잖아.


미친. 손잡고 있는 거 딱 보니까 얼굴이 활짝 폈든만. 넌 니가 아깝지도 않냐? 아니? 도대체 애 셋 달린 유부남 새끼가 뭐가 좋아서 계속 만나는 건데? 내가 진짜 어이가 없는 게 그 새끼 너한테 돈 빌려가고 달라면 때리기까지 한다며?


누가 그래?


누구긴 누구야?


그래서.


뭐가 그래서?


니가 뭔 상관인데?


그러니까 너도 뭔 상관인데?


야! 너 소율이랑 끝났어? 안 끝났어?


뭔 상관이야? 너야말로 택시기사 만나기 전에 만났던 놈 정리했어? 안 했어?


나쁜 새끼. 넌 나한테 못 되게 구는 놈들보다 더 나쁜 새끼야.


와… 이건 또 뭔 소리래? 너나 말자 속 썩이지 마.


니가 그랬다며? 평생 사랑하고 살자고. 근데 너 하는 건 뭔데? 부산이나 찾아가고! 말자 내 친구야!


누가 아니래?


그니까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아, 됐어. 아우 씨! 소율이랑 그렇게 된 것도 다…!


뭐?


아, 됐어.


뭐가 돼?


됐다고.


알았어. 평생 그렇게 살아라.


하… 넌 정말 날 눈곱만큼이라도 좋아하냐?


한숨 섞인 뒤의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컹. 영숙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가 짖지 않는 걸 보니 말자다.


왔어?


말자가 대답도 없이 내 목부터 끌어안는다. 찬바람이 느껴지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 뭘 아무것도 먹지 않았나 보다. 어떤 음식 냄새도 나지 않는 게. 그저 시린 겨울의 찬바람 냄새만.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냐.


그때, 꽉 안아주었어야 했다.

난 영숙이 인기척을 신경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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