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다시 알기 (2)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고

by램즈이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1926)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의 내면을 다루며 헤밍웨이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장편 데뷔작이다.


1920년대 전후 파리에 머무르는 미국인 및 영국인, 지식인, 예술가들의 방황하는 일상으로 시작한다. 전쟁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치관, 종교적 신념, 도덕적 기준이 허물어진 등장인물들은 카페를 전전하며 술을 마시고, 무의미한 연애와 방황으로 삶의 허무함을 달래려 애쓴다.

주인공 제이크와 브렛, 그리고 브렛을 둘러싼 여러 남자들(그녀의 약혼자 마이크, 제이크의 친구 로버트 콘)은 스페인 팜플로나로 투우 축제를 보러 떠난다. 산 페르민 축제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등장인물 간의 질투, 감정적 폭발, 결투가 이어진다. 브렛은 19세의 젊고 열정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에게 매료되어 그와 함께 잠적하기까지 한다.


그동안 이 바카라을 멀리한 이유 중의 하나는 투우를 다뤘기 때문이다. 잔인해 보이는 경기라 샅샅이 알고 싶지 않았다. 읽고 보니 여기서 투우 축제는 플롯을 이루는 몇 기둥의 하나이고, 인물들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 소설에 가까웠다. 단순하며 건조한 상황 묘사의 행간에 섬세한 심리학이 담겨 있다.

바카라을 맺을 즈음에는 오히려 나도 투우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고, 하나의 예술로 칭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동작이 선의 절대적인 순수성을 유지할뿐더러 매번 조용하고도 침착한 태도로 뿔이 몸을 아슬아슬 스쳐 가게 하기 때문이었다. ---

모든 동작을 하나로 연결해 완전하면서도 완만하게, 근엄하면서도 유연하게 했다. 속임수도 없었고,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또한 조잡한 데도 없었다. 모든 동작이 극치에 달했을 때 관중은 갑자기 마음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 경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


하지만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된 진짜 이유는 참으로 오랜만에 바카라을 읽으며 낄낄거리고 웃었기 때문이다. 만화가 아닌데도 깨알처럼 재미났다. 뒷부분 17장에서 여주인공 브렛을 우직하게(어리석게) 짝사랑하는 로버트 콘이 연적들을 차례로 때려눕히는 장면이 나온다. 당하는 쪽은 콘의 제스처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나가떨어진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것은 콘이 과거에 진짜 복서였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제야 첫 장에서 왜 그리 로버트 콘의 복서 이력이 자세히 기술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 바카라의 첫 문장은 “로버트 콘은 한때 프린스턴 대학의 미들급 복싱 챔피언이었다”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된 후로는 (아직 쓰지 못하는 7년째 지망생) 소설을 읽다가 자꾸 작가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곤 한다. 이 블랙 코미디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헤밍웨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가 느껴졌다.


‘1장에서부터 슬그머니 준비를 해놓고, 17장에 이르기까지 딴 이야기만 하며 관심을 분산시켜 놓았구먼.’


헤밍웨이 자신이 실제로 주먹질 육탄전을 자주 벌였기 때문에 이 장면은 생생하고 자연스러웠다. 영화건 소설에서건 맨주먹 싸움질이 나오면 내 관심 밖이라며 늘 건너뛰곤 했는데….


스페인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가 나오기 전(前)의 1부는 주인공인 저널리스트 제이크의 파리 생활이다. 이 부분은 헤밍웨이의 20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파리는 언제나 축제/A Moveable Feast』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만든 우디 앨런이 이 바카라들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원조는『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원조도 발견했다. 20세기 소설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고 유명한 여성 캐릭터는『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홀리 골라이트리라고 한다. (아름다운 주제가와 오드리 헵번 분위기로 다소 우아하게 희석된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트루먼 커포티의 원래 소설 주인공) 전후 슬롯의 불안과 개인적 상처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독특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홀리 골라이트리 이전에『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브렛이 있었다. 홀리의 언니뻘 혹은 라이벌이 되는.


그동안 헤밍웨이가 지루하다고 떠벌리며 다녔는데, 그의 바카라을 읽고 킥킥 거리며 투우를 용납하다니. 무엇보다도 마음으로부터 그가 심리 묘사 전문가라고 칭송하고 있으니. 이 하루아침의 급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아무래도 나도 그에게 한방 얻어맞은 것 같다. 영리한 헤밍웨이의 강력 글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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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2년 (p255, p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