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를 읽고
태지원 작가님(온라인카지노 필명 유랑선생) 작품을 즐겨 읽는 편이다. 청소년이 주 타깃인 바카라들도 나의 부족한 상식을 채우기에 딱 좋다. 따끈따끈한 최근작『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과 생각에 잠기게 되는 부분을 나누어 본다.
## 연리도(蓮鯉圖)와 과거 시험장 이야기
연꽃과 잉어를 함께 그린 그림은 수험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시험에 연이어 붙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함께 소개된 평생도 중에서 <소과 응시> 그림은 과거 시험장의 커닝 사례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 부정행위 풍경이 다양하고 응시생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단 2명이 뽑힌 정조 24년 별시에는 7만 명이 답안지 제출) 이렇게 허다한 사람들이 -나라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변별력 없는 엉터리 공적(公的)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니…. 나라의 미래가 그려지며 마음이 먹먹했다.
저자의 김구 선생 예에 더하여 영, 정조 시대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과거시험 대목만 나오면 코웃음 치던 태도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 시험을 무시한 값이 커서 천재 저술가는 50대 내내 말단 공무원 직을 수행하며 어렵게 살아야 했다.
83세 이상의 리그가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안도감을 느끼고 격려를 받았다. 인조 15년 응급으로 무더기 무과(武科) 합격자를 배출했을 적에 등장하는 정겨운 토박이 이름들!
‘이눗쇠, 김끝세, 안끝남’
“안끝남 합격자님.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호작도와 양반 평민 이야기
새해의 복을 비는 호작도에는 호랑이와 까치로 그려진 양반과 농민의 상호 다이내믹이 들어있다. 그런데 함께 소개된 김득신의 풍속화 <노상알현도>을 보고서 속이 부글부글했다. 말위에 탄 양반에게 12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상민 남성의 모습이 담겨있다. 90도를 넘어서, 거의 선채로 드리는 큰 절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건만.
<공명첩>이라는 양반 백지 임명장도 처음 소개받았다.
## 문자도와 게 거북이
옛사람들이 동물을 보며 인간의 어떤 덕목을 유추하는 것이 신기하다. 거북의 느리지만 단정한 걸음걸이는 조심스럽고 공손한 자세를 떠올려 례(禮)와 더불어 그려졌다. 게도 출세했는데 '손뼉 칠 때 떠나라'는 카피를 잘 실천한 것으로 뽑혔나 보다. 스르륵 나아갔다 뒤로 물러서길 반복하는 모습에서 검소하고 욕심이 없는 성품, 염(廉)과 함께 등장한다.
## 바카라가도와 다시점 작품
‘바카라쾌’라는 명쾌하고 예쁜, 바카라 상인(商人)을 지칭하는 단어를 알았다.
민중화가의 솔직함 때문에 그동안의 기법을 무시하고 자유로이 그려 낸 바카라거리 민화가 나온다. 원근법이나 일반 상식을 넘어선 다시점 그림이다. 서양의 세잔이 생각났다. 의도적으로 여러 시점을 조형 원리로 삼아 입체주의에게 바통을 물려준 후기 인상파 화가. 바카라가도가 정조 시대부터 유난히 유행했다고 하면 세잔 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
"폴 세잔. 혹시 당신의 다시점은 조선 무명 화가에게 힌트 얻은 건 아닌지?"
## 화접도와 정약용 시(詩)
금슬 좋은 부부로 오래 살고픈 소망을 담은 화접도 챕터에서 뜻밖의 대어(大漁)를 낚았다. 무식함이 들통 나니 좀 부끄럽지만 정약용의 결혼 60주년 기념 <회근시>를 처음 읽은 것이다. 목란사 소리? 목란사는 무엇?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의 화목란을 읊은 서사시네. 여성으로 12년간 아버지 대신 전장을 누빈 전쟁 영웅. 이토록 멋진 캐릭터가 있단 말인가? (디즈니 애니 <뮬란>을 보지 않아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
18년 유배 기간 동안 거친 삶을 꾸려간 아내에게 여걸 화목란의 비유를 선물한 멋쟁이 남편.
## 무궁한 출간의 비결은 무엇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다. 비유가 약간 핀트가 안 맞지만 열 명의 자식 중에 단 한 명도 배 아프지 않고, 생사를 걸며 낳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한결같이 열 달의 묵직한 수고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십 명의 자녀도 마찬가지.
이 바카라은 태지원 작가의 스무 번째 작품이다. (놀랍게도 그중 20쇄 가까이 찍은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다.) 이 다산(多産)의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경제와 역사에 박식한 사람도 세상에 많지만 이토록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그 기획력과 창의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다독하고 생각이 깊었던 성장 이야기도 떠오른다. 현장에서 청소년들과의 생생한 부대낌에서 오는 소통력, 아침 일찍 시간을 쓰는 부지런함. 아무튼 경이로울 뿐이다.
스무 번째 바카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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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게, 민화는 처음이지?』 태지원 지음, 미래 M&B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