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았다.
요즘은 정부 24로 발급신청을 하고 집에서 바로 출력할수 있어 편해졌다.(역시 대한민국은 IT강국이다) 프린터는 한참 동안 종이를 토해낸다.
초본을 발급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동안 참 이사를 많이도 다녔다.
주소 이력을 다 넣어 뽑으면 몇 페이지가 된다.
서울 공릉동에서 첫 신혼 살림을 시작한 후 내가 기억하는 이사만 해도 열두 번이다.
그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열두 번이나 했다니 생각만 해도 피로가 밀려온다.
이사해야 하는 이유는 늘 있었다.
5년마다 옮겨야 하는 학교 정기 전보 때문에,
새 집을 장만해서,
더 큰 집으로 옮기느라고,
아이들이 자라니 좋은 학군지로 옮기느라,
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 오느라.....
제아무리 포장이사를 한다고 해도 그 많은 자잘한 살림들부터 커다란 가구들까지 매번 짐을 싸고 풀어
다시 평온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의 농경 슬롯에서 이사라는 것은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자기가 태어난 동네, 자기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이들도 많았을것이다.
전통 슬롯에서 이사는 단순히 짐을 옮기는 것 이상으로, 그 집안의 운, 그리고 조상의 기운을 새로운 터전으로 고스란히 이어가는 신성한 과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새 집으로 안전하게 옮겨가는 것은 이사 의례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전통 가옥에서 아궁이의 불씨는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조왕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삿날이 되면 안주인은 아궁이 깊숙한 곳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알불씨를 골라 화로에 담고 이 불씨가 새집에 도착할 때까지 꺼지지 않도록 재를 덮어 산소 공급을 조절하며 애지중지 품고 이동했다. 새집에 도착하면 화로에 담아온 옛집의 불씨를 아궁이로 가장 먼저 옮겨와 불을 지폈다. 이를 통해 이전 집의 번창했던 가운과 따뜻한 기운이 새집으로 끊김 없이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적 우리 집의 첫 이사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살다가 아무런 대바카라도 없이 육남매를 데리고 도시로 나와야 했던 부모님.
대청댐 공사로 인해 논과 밭과 집이 수몰되었으니 약간의 보상금을 받아 나오셨겠지만,
나라에서 쳐준 헐값의 보상금을 손에 쥐고 떠나오던 길,
엄마의 마음은 온통 근심으로 가득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웠으리라.
그 황망한 이삿짐 트럭에서 엄마가 가장 먼저, 조심스레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연탄 화덕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저녁밥을 짓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수몰로 인해 어쩔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거대한 상실 앞에서도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엄마의 단단한 의지이자, 결코 꺼뜨려서는 안 될 우리 집의 종잣 불씨였다.
바람벽 하나 없는 낯선 도시의 허허벌판에서, 엄마가 불어넣은 그 정성과 온기 덕분에 우리 육남매는 잘 자랄 수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삶의 터전이 흔들리거나, 소중한 것을 잃고 낯선 벌판에 던져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어린 시절 수몰지구가 된 고향을 떠나 옥천으로 이사하던 날,
엄마가 품고 오셨던 연탄 화덕의 불씨는
삶의 가장 혹독한 순간에도 꺼뜨리지 않았던 생명력이자 바카라임감이었다.
이삿짐 트럭에 가장 나중에 실려 가장 먼저 하차했던 그 종잣불씨처럼,
어떤 시련 속에서도 내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채운의 시 <불의 씨앗> 중에서 운촌 쓰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
**충북 보은군 소재. 대청댐 공사로 인해 수몰지구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