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우송(落羽松)

by운촌




사람도, 나무도 첫인상이 있다.

오래도록 곁에서 천천히 스며드는 애정도 소중하지만, 첫 마주침 그 짧은 몇 초 만에 운명처럼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도 있다. 나에게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그랬다.


'어쩜 나무가 저리 멋질 수 있을까?'


반듯하고, 우람하고, 시원한 수형(나무 모양), 부드럽고 섬세한 잎들. 나는 일단 그 압도적인 기럭지에 숨이 멎었고,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곧게 뻗은 자태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그 거대한 그늘 아래를 산바카라할 땐 든든함과 깊은 안정감이 들곤 한다.


까마득한 옛날, 꼬맹이 중학생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 만난 미국 공원의 오래된 나무 사진 한 장. 아마 그 나무가 자이언트 세쿼이아였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부피를 자랑하는 '제너럴 셔먼'. 지구상에서 가장 키가 큰 거인 나무.

세계 여행은커녕 국내 여행조차 못 가봤던 어린 소녀에게, 영어 교과서 속의 작은 사진 한 장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기에 충분했다.


세쿼이아 삼형제는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사계절 내내 싱그러운 녹색 잎을 품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나무다.

메타세쿼이아는 중국 원산지로 둥근 솔방울을 맺고 아름다운 원뿔형 수형을 뽐내는 낙엽 침엽수다.

낙우송은 습지 주위에 많이 자라며 땅 위로 무릎이 솟은 듯한 기근(호흡뿌리)이 매력적인 낙엽 침엽수다.

특히 메타세쿼이아의 발견은 식물학계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한동안 화석으로만 발견되어 멸종된 줄 알았던 이 나무가 1940년대 중국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기적처럼 발견된 것이다. 그렇게 귀하던 나무가 이제는 우리 주위에 흔한 공원이나 가로수길로 다가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것이 식물의 세계다. 참나무 형제들처럼 낙우송과 메타세쿼이아는 쌍둥이처럼 닮아 종종 헷갈리지만, 이럴 때 나만의 확실한 치트키가 있다. 바로 잎차례다.


낙우송은 어긋나기, 메타세쿼이아는 마주나기

'ㅁ'과 'ㅁ'을 연결하면 절대 잊지 않는다! 마주나기면 메타~

깃털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난 잎을 눈여겨보거나, 가을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들고 잎차례를 확인해 보면 금세 정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친구가 들려줬는데, 메타세쿼이아 열매에는 예쁜 입술 모양의 비늘이 있어 낙우송과 구별된다.


메타세쿼이아(좌)와 낙우송(우)의 잎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수목원에는 멋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펼쳐져 있다.

봄에는 갈색의 굵은 줄기 사이로 돋아나는 여리여리한 연초록의 신록이 아름답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며 깊고 싱그러운 초록의 그늘을 선물하고,

가을에는 붉은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지며 바닥에 폭신한 융단을 깔아준다.


하지만, 저 우람한 나무가 품은 솔방울 속 씨앗은 작디작다.

그 작은 씨앗이 세상을 압도하는 거대한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삶의 진리를 배운다.


지금의 초라하고 작은 모습만으로 어떤 사람의 미래를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잠재력은 어쩌면 지구상의 그 어떤 자이언트 세쿼이아보다 거대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무시무시한 더위도 결국 물러났다. 거대한 지구의 공전은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느린 속도로 다가온 가을은 또 얼마나 호다닥 떠나갈까.


이제 다시 나무 아래를 걸어야 할 때다. 고개를 들어 나무들이 어떤 얼굴로 이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지 지켜보자. 저 아득한 높이까지 중력을 거슬러 땅속의 수분을 끌어올리고, 한여름의 뙤약볕을 당당히 이겨낸 끝에 한 세상을 오지게 품어본 메타세쿼이아 그리고 낙우송..

그 잎이 녹슨 깃털이 되어 바닥으로 흩날릴 때,

허리를 숙여 잎들이 마주나기인지 어긋나기인지 직접 확인해 볼 일이다.


어제보다 조금더 초록은 사라지고 갈색빛이 더해졌다.

가을이 진짜 오고 있다.

어떡하지?









채운의 시 <낙우송>을 운촌 쓰다








낙우송

落羽松



채운



소슬바람에 실어

녹슨 깃털을 내려놓고 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갈맷빛 날개 펼쳐

한 세상 오지게 품어봤으니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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