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71
수요일. 아내는 출근했다. 나는 야간 근무라 오늘 낮 시간이 자유롭다. 창밖으로는 5월 햇살이 반짝거린다. 느릅나무 연초록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낀다. 집에서 빈둥빈둥 뭐 하고 있냐고, 어서 오늘을 즐기라고, 당장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자 몸이 근질거린다. 머릿속으로 어디를 갈까나, 생각해 본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도서관. 아니 아니. 헬스장, 왜 그러니? 그럼, 어디? 그래, 오랜만에 극장이나 가보자. 마침 10시에 상영하는 영화가 있다. 후다닥 샤워하고 나간다. 약속 늦은 사람처럼 마음 급하다. 이런 성질머리 하고는, 시간 넉넉하다고 타이른다. 그제야 주위가 보인다. 고개 들어 파란 하늘 한 번 보고, 살랑 부는 바람 깊이 들이마시고, 윤기 좌르르 기름진 쌀밥 같은 이팝나무 하얀 꽃들에게 눈인사하고, 울긋불긋 영산홍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콧노래가 흥흥 절로 나온다.
평일 오전 극장은 한산하다. 넓은 극장에 손님은 열 명 남짓. 한 켠에 있는 카페는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표를 끊는다. 1만 원. 조조 상영 5,000원이었던 예전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많이 오르긴 올랐군, 생각한다.
영화 상영 전, 광고가 나온다. 증권사 광고가 많다. 하긴 KOSPI 지수 7,000을 넘었다. 세상에나. 작년 말 4,000 언저리였던 지수가 불과 5개월만에 이렇게 뛰다니. 주식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증권사 광고가 많은 게 이상하지 않다. 주식을 해야 하나, 나만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뒤처지는 게 아닌지 초조해진다. 친한 고교 동기들도 주식 안 하는 녀석들이 없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 내 마음이 내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 손에 힘을 꽉 준다.
다행히 영화가 시작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 중간에 몇 번 울었다. 감동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들. 우정, 용기, 희생, 희망.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일어나지 못했다. 웅장한 우주 여행 뒤라 KOSPI 지수 따위는 티끌, 어느새 잊혔다.
극장을 나온다. 여전히 찬란한 5월의 오후였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나는 배가 고팠다. 칼국수 잘하는 집이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이 빛의 속도로 광활한 우주를 빠르게 날아갔던 것처럼 내 마음도 칼국수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