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가는 길 (11)

순례자를 위한 숙소

by조은


개선문을 둘러보는 것을 끝으로 영혼의 세계로 떠난 지인을 추모하려고 시작한 짧은 여정을 마치기로 했다.


개선하기 위한 내 순례는 이 개선문을 떠나야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얽힌 사연도 많고 깊다.


나는 파리의 밤길 바닥에 새긴 내 발자국을 따라 몽파르나스 역 부근에 있는 내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의 야경을 뒤로하고 돌아온 숙소는 밤이 깊어 적막하다.


방에 들어서자 나서기 전 가득했던 슬픈 기운이 옅어져 희미해진 것이 느껴졌다.


내일 아침 일찍 파리의 청소부는 내가 파리 시내 곳곳에 버리고 온 슬픔을 수거해 갈 것이다.


아마도 그는 파리의 야경에 흠뻑 취한 관광객들이 내지르는 환호 부스러기도 함께 수거할 것이다.


방에 불을 켜자 단출한 방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침대와 소파, 화장대, TV 등 가구는 순례객의 하룻밤을 바카라임지기에 충분하다.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불어를 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고 꺼 버렸다.


대신 파리 도심을 돌아다녀 땀이 배인 셔츠를 세탁하기로 했다.


세탁기보다 손빨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올 때 세탁비누를 챙겨 왔다.


난파선에서 떨어진 나무조각처럼 해변으로 떠밀려 순례의 길에 나선 내가 빨랫비누를 챙길 정신머리는 있었나?


익숙한 습관은 때론 문신보다 더욱 짙게 몸에 새겨지는지, 짐을 풀어 빨랫비누를 찾다가 헛웃음이 났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셔츠 여기저기에 비누를 대고 문질러 잘 스며들도록 한 다음 손으로 비벼 빨았다.


이어서 충분히 헹군 다음 손으로 쥐어짜고 옷걸이에 걸어 샤워 부스 위에 걸었다.


힘을 주어 짰지만 남은 물기가 셔츠 밑단을 따라 모이다가 이윽고 한 방울씩 연달아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배수구로 흘렀다.


셔츠 밑단에서 연달아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마치 수송기 뒷문을 통해 적진으로 침투하는 낙하산 부대원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내일 오전까지 마를 것을 기대하며, 널어둔 셔츠를 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늦은 밤 적막한 이 방 안에서도 혼자만의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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