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커피

힘조절은 당구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by조은


오랜만에 사무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이 보인다.


드립 커피를 담은 병 옆으로 맥락 없이 줄지어 선 음료수들이 제조사에서 입혀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커피는 친환경에 목을 맨 회사에서 병 제조 공장에 주문해 만든 무덤덤한 표정의 투명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다.


그래서 병에 담긴 검은색 액체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칠흑 같은 밤에 만들었는지 더 검게 보인다.


플라스틱 병에 든 커피를 종이컵에 따르다 그만 가장자리에 넘칠 만큼 붓고 말았다.


파도가 출렁이듯 금세라도 종이컵 가장자리 해변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할 것만 같다.


이럴 땐 신속하게 중앙재해대바카라본부를 가동해야 한다.


컵 가장자리에 조심스레 입을 대고 한 모금만 덜어내려다 생각보다 많이 마시고 말았다. 아뿔싸.


커피는 수분을 빼앗아 목을 건조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제습기를 풀가동한 느낌이 목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색깔이 검어 그렇지 수분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목을 건조하게 만드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물보다 더 센 놈인가 싶다.


문제는 목을 건조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이 녀석은 마시는 사람 체질에 따라 마신 날 어두운 밤을 삼키는 블랙홀이 된다고.


겨우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벌써부터 심장이 트위스트 음악에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벌렁대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금붕어 마냥 작은 내 입술이 오늘만큼은 크릴새우를 흡입하는 고래처럼.... 항상 후회는 늦다.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 같다. 이 검은 액체 탓에 밤새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벌써부터 하얗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침나절이라 잠자리 들기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잠을 못 자게 되면 어떻게 할까?


이런 걱정들이 러우 전쟁 전장에서 날아다니는 드론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드립 커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아침부터 뭔 드립인지,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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