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새됐다.

비둘기처럼 다정하더라도

by조은


공원 벤치 아래 가을을 입에 문 비둘기들이 뒷짐을 지고 땅바닥에 흩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사냥감인 양 쪼아대고 있다.


이들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벤치 뒤쪽으로 이들은 유해조류이니 먹이를 절대 주지 말라고 나라에서 설치한 준엄한 현수막이 그 옛날 장터에 걸린 조선시대 방처럼 내걸려 있다.


나는 이들이 필시 사람들이 쓴 비방 내용을 알지 못해 현수막 바로 앞에서 버젓이 먹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이 났는데


왜냐하면 이들을 비방하는 글이 현수막에 가득하지만,


담화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비둘기 족속을 '멸문지화'에 처하거나, 귀양을 보낸다는 글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벌하는 대신 도리어 이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자는 국법에 따라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현수막 내용에 겁을 먹지 않고 현수막 코 앞에서 먹이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비둘기들은 나라에서도 자신들을 어찌할 수 없단 사실을 알고 짐짓 모르는 체하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은, 어찌하여 순진한 모습에 기껏 과자 부스러기를 사냥감으로 쫓는 이들이 한순간 유해조류로 전락했느냐 하는 것이다.


흰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칭송을 받고 있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들은 도심과 주거지 인근에 살면서 천적이 없어 크게 번성했다.


또한 수요자가 없는 배설물을 끊임없이 대량 생산했다.


게다가 나라에서 그들의 거주지로 지정하지 않은 곳에 무단으로 전입하여 살았다.


심지어 식품위생법을 준수하지 않은 토사물까지 먹어치워 그것을 보는 포유류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에...


이런 조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울부짖음에 나라에서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한다.


비둘기들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 짓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면 내 처지도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생계를 위해, 혹은 자존감을 위해, 내가 했던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혹시 유해조류의 그것과 같은 부류로 판단받아 온 것은 아닐까?


급기야 나를 비둘기 취급하는 그들은 나도 모르게 험담의 사발통문을 맹렬하게 돌려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를 배제할 결심을 하진 않을까?


아무 죄 없이 무고한 나를 은밀하게 유배형에 처해 은근히 따돌림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을 더 이상 주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뒤에서 담합할 음험한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어깻죽지와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면서 날개가 솟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내가 비둘기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에, 나는 완전히 새됐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론, 사람들과 일정거리를 확보하여, 나라에서 현수막을 내걸어야 할 정도의 행동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나는 누가 볼까 봐 손에 든 과자 부스러기를 짐짓 감추고 서둘러 현수막 앞을 달리듯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난각번호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