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로 접어든 버지니아는 연록의 부드러움이 가고 짙푸른 녹음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의 풍경은 참 신기할 정도로 한국 사계절의 결과 닮아있다.
해가 기울어가는 늦은 오후, 운동화 끈을 묶고 숲길로 나선다. 울창한 초록 터널 사이로 길게 늘어진 오후의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낮 동안 달궈진 대지에서는 싱그러우면서도 묵직한 풀 내음이 끼쳐온다. 한낮에 잠시 들른 홀푸드 주차장 위로 벌써부터 아지랑이 같은 여름의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계절의 바퀴가 또 한 칸 정직하게 굴러갔음을 실감한다.
푸르른 축복 같은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순간과 내 안의 뜨거움을 한 폭의 그림처럼 붙잡아두고 싶다는 열망이 고개를 든다. 마음이 잔잔하게 일렁일 때는 바카라장 한구석에서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자전 에세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꺼내 든다.
모지스 할머니가 92세에 발표한 공식 자전 에세이로 유년 시절부터 뒤늦게 붓을 들게 된 사연까지 할머니의 따뜻한 그림들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가 아늑한 위로를 준다.
모지스 할머니는 결혼 후 버지니아주 스탠턴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그곳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버터와 감자를 팔며 억척스럽고도 행복한 삶을 일구었는데, 그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평화로운 구릉지와 농가 풍경의 상당 부분은 바로 버지니아 셰넌도어 밸리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다른 그림들 역시 버지니아, 뉴욕, 버몬트 등 가족과 함께 살아갔던 미국 동북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묘사하는 계절의 일상들은 지금 내가 누리는 버지니아 풍경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내가 오후마다 달리는 트레일의 울창한 초록 터널은 할머니의 캔버스 속 싱그러운 여름 풍경과 겹쳐지고, 가을에 불타오르듯 물드는 이곳의 단풍은 단풍나무에서 시럽을 짜내던 그녀의 달콤한 가을 그림을 연상시킨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나이가 일흔여섯이었다는 점이다. 평생 평범한 농부의 아내로 살던 그녀는 관절염 때문에 더 이상 좋아하는 자수를 놓을 수 없게 되자, 실과 바늘 대신 붓을 들었다. 거창한 예술가적 야망이나 세상의 인정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손을 놀릴 수 없어서, 혹은 방 안의 얼룩진 벽지를 가리기 위해 시작한 작은 시도가 101세까지 이어져 전 세계를 감동시킨 걸작이 되었다.
그녀의 담담한 삶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우리가 얼마나 무겁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을 가두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수를 못 하게 되어 붓을 들었듯 막다른 길에서 시작한 작은 시도들이 결국 가장 알맞은 때의 시작이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완벽한 결말을 먼저 계산하느라 주저하기보다 서투른 손짓으로라도 캔버스에 점 하나를 찍는 것이 진짜 삶의 예술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삶의 풍경이 서투르고 투박할지라도 그것은 가을에 만날 찬란한 결실을 위한 소중한 과정일지 모른다. 내일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초여름 정취를 충분히 만끽하고, 싱싱한 식재료를 사다 정성스러운 식탁을 차려야겠다.
모지스 할머니가 말한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우리 삶의 시계에 아직 쓸 수 있는 '낮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나이라는 숫자에 갇혀 지레 포기하기 전에 여름의 긴 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여백을 바라보자. 길어진 낮 동안 우리는 새로운 글을 쓸 수도, 새로운 길을 달릴 수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녀의 삶을 담은 따뜻한 캔버스들이 지금 우리 곁에 와 있다. 마침 워싱턴DC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SAAM)에서 그녀의 예술 세계를 집대성한 특별전 <Grandma A Day's Good Moses: Work>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2일까지 이어지니, 뜨거운 여름날의 한 자락 시간을 내어 늦지 않게 발걸음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