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로 살아가다 보면, 이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자주 무력해진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같은 공간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삶의 결은 도무지 겹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곳을 기회의 땅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매일의 생계를 버티는 장소로만 받아들인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먼저 의식하게 된다.
이국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번역하는 과정이다. 낯선 언어의 질감에 혀를 맞추고, 그곳의 관습을 옷처럼 껴입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진짜 나의 목소리는 안개 너머로 사라지곤 한다. 낸시 주연 김의 소설 <미나 리의 마지막 이야기>(The Last Story of Mina Lee)는 바로 그 사라진 목소리를 추적하며, 코리안 아메리칸 이민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작품이다.
소설은 딸 마고가 LA 한인타운 낡은 아파트에 홀로 살던 엄마 미나의 죽음을 확인하러 오며 시작한다. 평생을 성실하게, 하지만 지독할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미나. 마고는 엄마의 아파트에서 새빨간 신발 한 켤레를 발견한다. 평소 검소하다 못해 자신을 지우며 살았던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물건이다. 마고는 여러 미심쩍은 정황들을 보며 엄마가 단순히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님을 직감한다.
이를 추적하던 마고는 엄마의 과거 동료였던 조를 만나게 되고, 1980년대 미나가 미국에 갓 도착했을 당시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마고와 1980년대 처음 미국에 발을 디딘 미나의 과거를 교차하며 전개된다. 미나는 남편과 딸을 잃고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서류 미비자, 일명 불법 체류자였다. 그녀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 전에, 숨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거대한 감옥이기도 했다. 소설은 미나가 무엇을 얼마나 견디고 살아왔는지 처절한 생존기를 한 겹씩 벗겨낸다.
미나 리의 삶은 처절하다. 미국 땅에서 그녀는 외국인이 아니라 슬롯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그림자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엄마와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로 교육받은 딸의 대화는 가슴 아플 정도로 안타깝다. 한국어가 편한 엄마와 영어가 편한 딸 사이의 간극은 언어 차이를 넘어 세대와 문화의 단절로 이어진다.
사건의 실체는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조와 미나 사이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였다. 둘은 과거 일로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다 몸싸움으로 번졌고, 미나가 넘어지며 머리를 크게 부딪치게 된다. 겁에 질린 조는 미나가 죽었다고 생각해 그대로 아파트를 뛰쳐나간다. 당시 미나는 아직 살아있던 상태였고, 쓰러진 채 방치되다가 서서히 고독하게 숨을 거둔다.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시작하다가 실제로는 사건을 푸는 과정에서 관계의 균열을 따라가는 에세이형 서사에 가까워진다. 엄마를 죽인 범인은 과연 조 한사람일까? 미나가 쓰러졌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버틴 데에는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적 불안함이 깔려 있다. 법과 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공포가 한 인간을 구호의 손길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다. 딸인 마고조차 엄마의 삶에 무관심했고, 이웃들과도 교류 없이 고립된 삶을 살았다.
마고는 엄마가 죽고 나서야 엄마가 미나라는 이름을 가진,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갈등했던 여성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부모를 그저 나를 뒷바라지하는 존재로만 규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된다.
전쟁의 상처와 빈곤을 안고 건너온 부모 세대와 그 결핍 속에서 자라난 자녀 세대. 소설은 그 갈등의 골을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듣고자 하는 의지임을 보여준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모녀의 갈등은 결국 오해를 빚고, 그 오해가 관계를 단절시킨다.
<미나 리의 마지막 이야기>를 덮으며 생각한다. 나 역시 해외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투명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이었다. 유창하지 못한 언어는 지능의 척도로 오해받고, 나의 배경지식은 그 슬롯에서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LA의 어느 아파트에서, 혹은 버지니아 어느 골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삼키며 살고 있을 수많은 미나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해외살이는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사진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때로 지독한 고독이며, 나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다. 한국계 작가 낸시 주연 김은 그 투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찬란하고 슬픈 역사가 있음을 나지막이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