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by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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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늘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만 사람의 삶은 좀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어떤 봄은 설렘으로 시작되고, 어떤 봄은 그저 버텨낸 겨울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런 이유에서 4월은 매년 새롭게 느껴진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라는 질문에 매년 다른 답을 내놓게 된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는 이 질문에 여전히 겨울의 긴 터널에 갇혀 있지만 봄을 향해 정진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작가의 삶은 스물두 살에 어머니를 폐암으로 떠나보내며 송두리째 흔들린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외도와 마약으로 자신을 학대하다 결혼 생활을 파탄 낸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절망의 끝에서 그녀는 우연히 발견한 아웃도어 잡지 속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사진 한 장에 운명을 건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285km의 험난한 도보 여행이다. 등산 경험이라곤 전혀 없었던 작가가 아무 준비도 없이 길 위로 나선다. 자신의 몸무게만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94일간의 고독한 행군을 시작한다. 작가는 전체 길이 중 약 1,700km를 홀로 걸었다.


작가는 미 서부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대신 PCT에서 마주한 육체적 고통을 더 신랄하게 그리고 있다. 발톱이 빠지고, 온몸에 멍이 들며, 뜨거운 사막과 얼어붙은 설산을 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행이다. 물이 부족해 탈수 상태에 이르고, 야생의 위협과 고립감 속에서 공포에 시달린다. 때로는 낯선 남성들과의 긴장감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몸이 지칠수록, 마음은 도망칠 곳을 잃고 정직해진다. <와일드>는 바로 그 지점, 도망칠 수 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고립된 자연 속에서 작가는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복기하면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비로소 온전하게 쏟아낸다.


육체적 통증은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덮어주는 역설적인 진통제가 된다. 배낭의 무게를 견뎌내며 한 발짝씩 내딛는 행위는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정화 의식과도 같아 보인다.


94일 후, 마침내 신들의 다리에 도착했을 때 작가의 손목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내면에는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단단한 근육이 생겨났다. 작가는 말한다. "인생은 얼마나 잔인한지,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와일드'한 황무지를 만난다. 경제적 파산일 수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일 수도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거친 길 위에서 당신은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그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해낼 것인가.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 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 p.574


작가의 여정이 생생하게 담긴 이 바카라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기로 결심한 한 여자의 뜨거운 고백이다. 셰릴은 아무 준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출발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서 후회와 학습을 반복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늘날 우리는 준비된 시작을 지나치게 요구받는다. 더 나은 조건, 더 완벽한 타이밍, 더 확실한 계획이 없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와일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 흥미로운지 모르겠다.


4월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애매한 달이다. 완전히 피어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겨울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 삶의 많은 전환점이 그렇듯, 변화는 충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지금이 완벽한 출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내딛는 일.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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