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없는 능력과 화해하는 법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by트로츠뎀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 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니체



아내는 매우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나에게는 결핍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의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도 어쩌면 바로 아내의 이 매우 특별하고 놀라운 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청각이 매우 발달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생전 처음 들은 노래라 하더라도, 그것이 팝송이던, J-pop이던, 중국 노래이던 상관없이 아내는 다시 그대로 재생할 수 있었다. '재생'이란 말이 딱 맞는 게, 아내는 일본어나 중국어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한번 그 노래를 들으면 정확하게 중국 노래나 일본 노래를 다시 따라 부를 수 있다.





아내의 놀라운 청음 능력

그래서 한 번은 장국영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내에게 그 노래 가사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가사의 뜻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가 워낙 정확한 발음으로 마치 중국사람처럼 노래를 부르길래 중국어를 배운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중국어든 일본어든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단지 노래를 들었다가 따라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심지어 아내가 한국사람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내가 중국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는다면 아내가 중국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mathew-schwartz--bAZGsko_po-unsplash.jpg아내의 놀라운 음악적 재능



아내의 놀라운 능력을 전문 용어로 '청음 능력'이라고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나는 알았다. 청음 능력이 좋은 아내는 음감도 뛰어나 한번 들은 노래를 정확히 모창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루 종일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고 가사를 번역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사 내용이 좀 저렴하고 선정적이어서 이 가사를 본 엄마한테 야단을 맞기도 했다고. 그래서 몰래 팝송 가사를 필사하고, 음반을 사모으고, 즐겨 음악을 듣다 보니 저절로 그런 청음 능력과 음감이 생겼다고 한다. 나와는 완전 반대다. 그리고 이런 아내의 능력은 내겐 절대 없는 것이다.



나는 청각보다는 시각 쪽이 발달한 편에 속한다. 소리에 민감한 편은 아니고 따라서 청음능력 따위는 내게는 없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청음 능력이 발달해 있는 사람은 유리할 것 같다. 왜냐하면 외국어는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고, 잘 말할 수 있으면 잘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음 능력이 좋으면 외국인의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하는 섀도윙(Shadowing)도 쉽게 구사할 수 있으므로 외국어 학습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하다. 반면에 나처럼 청음 능력이 약한 사람은 엄청나게 인위적인 노력과 반복 학습을 통해 외국어를 배워야 하니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는 역시 예상대로 외국어도 쉽게 배우고, 잘 구사한다.




하지만 나란 놈은

그렇게 청각이 매우 발달하고, 소리에 예민하며,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와 사랑에 빠진 나는 아내를 위해 나도 노래를 좀 잘하고 싶었다. 사실 우리의 사랑이 시작된 계기도 소리와 청각과 관련이 있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200킬로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서울과 지방에 각각 떨어져 근무하던 우리였지만, 전화로 통화할 때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아내는 빠져들었다(?)고 훗날 말했다. 아내가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는 걸 예민하게 포착한 나는 수없이 많은 바카라과 시와, 글을 내 목소리로 낭독한 녹음 파일을 아내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내가 추천해주는 박효신, 나윤권, 이소라, 김연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테일러 스위프트, 코린 메이, 바네사 윌리엄스 등등의 아름다운 노래를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함께 들으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을 키웠다. 그리고 이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채우는 아름다운 노래와 선율, 음악의 신비로움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나도 노래를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게는 그런 음악적 재능과 뛰어난 리듬감, 음감은 없었다. 그냥 난 다소 듣기 좋은 목소리만 가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안타까운 말을 듣는다.

"노래 잘하실 것 같아요."

아니다, 절대. 난 그냥 내 나이 또래의 아저씨들과 달리 다소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노래를 연습해서 아내를 위해 멋지게 불러주고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성시경, 김연우, 나윤권의 노래를 정말 열심히 시간 날 때마다, 주말에 모든 직원들이 퇴근한 사무실에 남아 열심히 연습하고 녹음하고 노래했다. 내가 정말 멋지게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을 불러주며 프러포즈할 수 있는 순간을 상상하며, 내 노래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내품에 안길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이렇게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 <너의 모든 순간>을 한 500번도 넘게 연습하고 불렀지만 내 노래 실력은 단 한걸음도 나아지지 않았다. 한 번은 내 나름 생각으로는 정말 잘 부른 것 같아서 녹음을 해서 아내에게 보내줬더니 아내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며 답장을 보내왔다.

"이거 일부러 웃기려고 그런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 한 한 달 넘게 노래 연습을 했어도 내 노래 실력은 조금도 발전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아 결국 난 노래로 아내를 감동시키려는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게 음악적 재능이 없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예술적 재능은 타고나야 하는 것이고, 최소한의 음악적 자질은 어린 시절의 조기 교육과 음악적 노출을 통해 계발되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내게 음악교육을 시킬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을 탓할 수도 없고, 무조건 노래 부르기만 연습시키던 베토벤 머리 모양을 닮은 중학교 음악 선생님을 탓할 수도 없었다.



노래를 통해 아내에게 감동을 선물하려던 내 계획이 무산되자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노래가 안된다면 악기를 배워 노래를 연주해서 아내에게 감동을 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이 있던 읍내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면 곧장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고, 주말에도 시간이 되는 날에는 학원에 와도 좋다고 해서 열심히 다녔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원장님이 첫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근데, 피아노를 배우시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중년의 남자가 동네 꼬마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와서 비장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하니 뭔가 심각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닌지, 뭔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난 일단은,

"그냥, 죽기 전에 피아노를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요."라고 답하고 열심히 학원에 나갔다.


하지만 역시 내게 없는 재능과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한 달 반쯤이 지나도 난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여전히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만 띵동 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번에 끝내지 못하고 버벅거리면서. 동료 수강생들이 이런 내 모습이 답답해 보였는지 자신들이 화음까지 넣어서 <나비야~>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키득키득거렸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들 눈에는 뒤늦게 피아노를 배워보려고 낑낑대는 아저씨가 재미있었나 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닌 지 한 1달 반이 지났을까, 나는 서울로 전보 발령이 나서 더 이상 피아노를 배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노래가 아니면 피아노 연주로라도 아내를 감동시키려는 내 계획은 또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서울로 돌아와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노래로 감동시키기 위한 계획을 은밀히 준비했다. 그것은 사무실 근처의 보컬 학원에 등록해서 제대로 노래를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퇴근 후에 그냥 운동하다가 온다고 해 놨다. 보컬 강사는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20대 초반의 풋풋한 대학생이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으세요?" 하길래,


나는 준비해 간 김연우의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을 내밀었다. 강사님은 웃으며 조금 어려운 노래지만 어디 한번 해보자고 말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진행되는 보컬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valentino-funghi-VRr9a2rOoBI-unsplash.jpg이 노래는 여기까지가 끝인가?


하지만, 하늘이 내린 재능이 없던 나는 노력과 인내만으로는 이 결함을 극복할 수 없었다. 음악에 대한 나의 열정,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용기를 낸 나의 시도는 하늘이 준 '재능 없음'에 무참히 부서졌다. 한 달 동안 김연우의 노래로 아무리 연습해도 단 두소절을 완벽하게 부를 수가 없었다. 발성, 박자, 음감, 리듬 모든 것이 문제였다. 박자는 놓치기 일쑤였고, 막상 노래를 시작하려면 말할 때와 달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강사님도 조금씩 지쳐갔으리라. 밥벌이의 어려움도 혹독하게 느꼈을 것이다. 1달이 지나고 재등록 기간이 다가왔다. 그때 강사님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저희 다음 달부터는 노래를 한번 바꿔 보실래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가 내민 곡은 김광진의 <편지>였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

그래서 나는 보컬 강습도 그만두었다. 난 노래는 못해도, 음악적 재능은 없어도, 문해력이 높고 어느 정도눈치는 있는 사람이니까. 그녀가 김광진의 <편지>로 내게 전하려던 메시지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지성을 갖춘 사람이니까. 여기까지가 끝인가라니?







그렇게 나는 내겐 없는 능력과 싸워 그 결함을 극복하고 넘어서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분명 음악적 자질과 예술적 재능은 노력만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그런 재능과 자질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결핍이 큰 한계로 다가온다. 그러나 자신에게 없는 능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애써 부인하면서 있는 체하거나 혹은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한 채 체념과 포기로 일관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결핍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즐기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야 말로 진정 창의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sudarshan-poojary-_DU0xXjO7mU-unsplash.jpg결핍을 극복하려 하지 말라



내겐 없는 능력과 화해하는 법

나는 비록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노래를 잘할 수 없었고, 손쉽게 피아노를 배워 멋진 연주를 아내에게 들려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빈 사무실에서 아내를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노래 연습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동네 꼬마 녀석들과 함께 피아노를 띵동 거리던 그 순간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잘 나오지 않은 목소리를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내던 그 순간들 만큼은 피곤함을 잊었고, 피아노를 치고 걸어오던 밤하늘에 걸린 별과 달은 내 마음에 영원히 새겨진 보석이었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무능력 속에서도 환희와 설렘의 순간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자기 자신에겐 없는 능력일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 무능을 즐기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과 화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니체가 말한 삶의 긍정은 어쩌면 이런 모습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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