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고현 들녘 철조망 너머로
바람은 오늘도 넘나드는데
고향 가는 길을 물어보던 사람들
어느 하늘 아래 잠들었습니까
총을 들고 끌려온 길이었지요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도 모르고
이 섬 모래벌에 내려앉아서
이름 대신 번호를 달았다지요
한쪽은 북녘 어머니를 그리고
한쪽은 남녘 아내를 그리며
같은 하늘 아래 갈라 앉아서
같은 달을 올려다보았을 것을요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고 온
피난민의 울음도 이 섬에 닿아
천막 하나에 몸을 맞대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울었다지요
잊자 잊자 하던 그 겨울이
철조망 녹슨 자리에 되살아나서
쇠줄에 매달린 바람 소리가
목메어 부르는 이름 같습니다
고향 가는 길은 어디였습니까
북으로 가는 길 남으로 가는 길
어느 쪽도 못 가고 이 섬에 남아
돌아보며 돌아보며 우셨다지요
차라리 철새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철조망 위를 훌쩍 넘어서
어머니 계신 하늘 아래로
단숨에 날아 닿았을 것을
거제도에 저녁노을이 내리면
수용소 터 위로 붉은 물이 들어
가도 가도 못 가던 사람들 이름이
바다 위에 소리 없이 번집니다
은파랑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