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호거산 골짝에 해가 기울면
운문사 종소리 먼저 내려와
원광 스님 계시던 옛터를 찾아
말없이 길을 오릅니다
귀산이 묻고 추항이 물어
평생을 새길 한 말씀 청하던 날
다섯 가지 길을 일러 주시던 목소리
솔바람 속에 아직도 들립니다
나라에 충성하라 이르시던 말씀
어버이께 효도하라 이르시던 말씀
벗을 믿음으로 사귀라시던 말씀
다 못 지킨 부끄럼이 가슴에 남습니다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말라시던 말씀
생명은 가려서 죽이라시던 말씀
젊은 두 사람은 말씀 품고
전장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지요
처진 소나무 가지는 땅을 향해
무슨 절을 그리도 오래 올립니까
사백 해를 숙여도 못다 한 마음
나도 따라 고개를 떨굽니다
법당 앞뜰에 낙엽이 쌓이고
스님들 독경 소리 잦아드는 저녁
지키마 약속은 쉬웠건만
지키는 일이 이리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운문사 뒷산에 달이 떠오르면
다섯 가지 말씀이 가슴에 내려앉아
못 지킨 날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끝내 합장하고 맙니다
은파랑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