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순수비
신사년 가을이었다지요
임금님 행차가 이 들에 닿던 날
새로 얻은 땅을 굽어보시며
돌 하나 세워 두고 가셨다지요
비자벌 너른 들에 바람이 불고
깃발은 산을 덮어 펄럭였을 터인데
어명을 새기던 석공 손끝은
무슨 마음으로 떨렸을까요
님은 가시고 돌만 남아서
천사백 년을 비바람에 서 있습니다
새긴 글자는 닳고 또 닳아
이제는 눈으로 더듬어 읽습니다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어느 나라 백성이 되었을까요
나라 이름이 바뀌던 그날에도
들꽃은 말없이 피었을 것을
비석 앞에 서서 손을 얹으면
차가운 돌이 가슴에 닿습니다
세운 이도 간 곳을 모르는데
돌은 어찌 이리 오래 섰습니까
차라리 글자처럼 닳아 없어져
바람 속에 스며들 수 있다면
창녕 들판에 해가 지는 저녁
이 돌 곁에 서 있겠습니다
천 년이 가도 못 다한 임금의 뜻
돌에는 새겨도 마음엔 닿지 않아
이 비석 앞에서
지나간 사람들을 불러 봅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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