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에 차오르는 새벽 물소리
뿌듯함이라는 말은
한자의 옷을 입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 입에서
우리 입으로 건너온
순우리말
뿌듯하다는
빈틈없이 들어찬 모양을 이르던 말
볏단을 가득 얹은 수레의
삐걱이는 등이 뿌듯했고
햅쌀로 눈금까지 채운
쌀독의 고요가 뿌듯했다.
곳간에서 쓰이던 말이
어느 해부터인가
사람의 가슴으로 이사를 왔다.
만족이라는 말
발이 땅에 닿았으니
이제 걸음을 멈추어도 좋다는 뜻
만족이
길 끝에서 신발끈을 푸는 마음이라면
뿌듯함은
길 위에서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마음
그래서 뿌듯함에는
언제나 시간 냄새가 난다.
빈 독 앞에 선
새벽 두레박질처럼
한 바가지 길어 붓고
또 한 바가지 길어 붓고
아무도 모르게
물소리만 쌓이던 날들이
어느 밤
가슴께에서
찰랑, 하고 입을 연다.
그래서 뿌듯한 사람은
저절로 숨을 깊이 들이쉰다.
가슴이 부푼 만큼
세상이 더 들어오기 때문
뿌듯함이란
누가 부어준 물이 아니라
내가 한 바가지씩
직접 길어다 부은 것이
넘치지 않을 만큼만 차올라
그 위에 달 하나
가만히 띄워보는 일
은파랑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