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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은 약점일까

by은파랑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오래 품어온 의문 하나를 연구실로 가져왔다.
어떤 사람은 불빛, 소음, 타인의 표정 하나에도
유독 깊이 흔들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심함이나 나약함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녀가 수백 명을 만나 살펴보니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약함이 아니었다.
세상이 들어오는 문이 조금 더 넓다는 것

아론은 이런 기질에 이름을 붙였다.
감각처리민감성.
인구의 다섯 명 중 한 명쯤이 지닌 성향이며
사람뿐 아니라 개와 말, 심지어 물고기에게서도
같은 무리가 발견된다고 했다.
수백만 년 진화가 이 기질을 지워내지 않고 남겨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리가 먹이를 찾아 나설 때
조용히 남아 바람의 냄새를 맡고,
이상한 낌새를 먼저 알아채 경고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수가 대담하게 달려갈 때
한 걸음 멈추어 살피는 이들이 있어서
무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후속 연구들은 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민한 아이들은 거친 환경에서는 더 크게 상처받지만
따뜻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게 피어났다.
학자들은 이를 난초와 민들레에 빗댔다.
민들레는 어디서나 자라지만
난초는 자리를 가리는 대신,
알맞은 볕을 만나면 가장 눈부신 꽃을 피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라며 이런 말을 들었다.
"뭘 그렇게 신경 써."
"별것도 아닌 일에 왜 그래."
그 말 앞에서 예민한 마음은
자기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느끼는 것이 틀렸나 보다,
덜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감각을 무디게 하려고
자기를 더 세게 몰아붙인다.
어떤 이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숨는다.
하지만 마음의 문은 닫아도 좁아지지 않는다.
다만 안에 쌓이는 것이 많아질 뿐이다.

예민함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느낄 때가 아니라
느낀 것을 쉬게 하지 못할 때다.
하루 종일 세상의 소리를 깊이 받아들인 마음에게는
조용한 방과 혼자 있는 시간이
숨 쉬는 일만큼 필요하다.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섬세한 악기를 조율하는 일이다.

예민한 사람은
상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 것을 먼저 알아채고,
말하지 않은 서운함을 읽고,
음악 한 소절에 오래 머문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더 많은 결을 보는 눈,
그것이 글이 되고, 노래가 되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손길이 된다.

물론 때로는 지친다.
받아들일 것이 많은 마음은
쉽게 가득 차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약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환경을 먼저 살펴보면 좋겠다.
나를 재촉하는 곳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 곁에서는 마음을 조금 더 펼치면 된다.

스스로가 너무 여리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말해줘도 좋겠다.
"네가 느끼는 건 틀린 게 아니야.
세상을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서
더 많이 느끼는 것뿐이야."

예민함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알맞은 자리를 찾아야 하는 재능이다.
그리고 재능이 쉬어갈 곳을 찾는 순간
가장 섬세하고 가장 깊은 꽃이
조용히 피어난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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