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나침반을 꺼내는 아침

by은파랑

노력(努力).
힘을 쓰고 또 쓴다는 뜻
그런데 이 말에는
어느 쪽으로 쓰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힘은 방향을 묻지 않는다.
앞으로 달리든 제자리에서 돌든
땀은 똑같이 흐른다.

방향(方向).
모서리가 어느 쪽인지,
몸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가리키는 말

노력이 힘 크기를 말한다면
방향은 힘이 닿는 자리
둘이 만나야 비로소
걸음이 길이 된다.

1990년대 초, 독일 베를린의 음악 학교.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을 세 무리로 나누었다.

장차 독주자가 될 것으로 꼽히는 학생들,
훌륭하지만 그 아래로 평가받는 학생들,
그리고 음악 교사가 될 학생들

모두 어린 나이에 악기를 잡았고
모두 매일 활을 들었다.
연습 시간이 아예 없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가 학생들의 하루를 일기로 기록하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헤아려보니
가장 앞서간 무리는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쓰고 있었다.

그런데 에릭슨의 눈길을 오래 붙든 것은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연습하는 방식이 달랐다.
혼자 조용히 앉아
잘 되지 않는 마디만 골라 붙들었고
오늘 넘어서려는 작은 목표를 정해두었다.

이미 매끄러운 곡의 앞부분을
기분 좋게 몇 번이고 켜는 일은
연습처럼 보이지만
연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일을
의도적 연습이라 불렀다.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못 하는 곳을 향해 힘을 모으는 일

또 하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쓴 힘은
오래 이어갈 수 없다.

그래서 한 번에 길게 달리지 않고
쉬는 시간을 날마다 하루 속에 끼워두었다.

같은 시간을 쓰고도
닿는 자리가 달라졌다.

새벽에 일어나 바카라을 펴고
저녁이면 강의를 틀어놓고
수첩은 할 일로 빽빽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고 믿었는데
어느 해의 끝에서 돌아보니
그해 초와 거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바쁘게 걸어온 길이
원을 그리고 있었던 것

그때 가장 아팠던 것은
게으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애쓴 시간이 분명히 있었고
그 시간이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한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날

그제야 물었다.
내가 가려던 곳이 어디였더라
이 노력은 그곳을 향해 있었던가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달리는 법은 알았지만
어디로 달릴지는
한 번도 정해둔 적이 없었다.

안갯속 배는
노를 더 힘껏 젓는다고 해서
항구에 닿지 않는다.

먼저 나침반을 꺼내
북쪽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같은 힘을 다시 쓴다.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노력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흩어지던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

그래서
아침마다 질문 하나를 적는다.

오늘 내가 가장 닿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그곳을 향한 오늘의 한 걸음은 무엇인가

한 줄을 적고 나면
할 일 목록의 절반은
가만히 뒤로 물러난다.

모든 일을 다 잘하려던 마음이
한 걸음을 정확히 내딛는 마음으로
조금씩 바뀐다.

잘하는 곡을 다시 켜는 대신
막히던 마디 앞에 앉아본다.

더디고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한 자리에서만
손끝이 조금씩 자란다.

방향이 있는 노력은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두 걸음이 길이 된다.

방향 없는 노력은
같은 자리를 더 깊이 파고들 뿐

오늘 아침에도
창가에 서서
작은 나침반을 손바닥에 올려본다.

바늘이 잠시 흔들리다
한쪽을 가리키며 멈춘다.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천천히, 그러나 곧게
첫걸음을 뗀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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