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욕들은
대개 몸에서 먼저 터져 나온 소리였다.
억울함이, 통증이, 억눌린 마음이
말이 되어 새어 나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언어에서는
순서가 다르게 적혀 있다.
학습 자료는 이렇게 지도한다.
"말한다"가 아니라 "지껄인다"로 써야 하고
얼굴은 "낯짝"이나 "상판대기"로
입은 "주둥이"나 "아가리"로
배는 "배때기"로 써야 한다.
"적을 단죄하는 글은
증오에 찬 말로 꾸며야 한다"는
문장도 함께 적혀 있었다.
낯짝, 아가리, 배때기
이 낱말들은 원래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가리킬 때 쓰던 말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그를 사람이 아닌 자리로
옮겨 놓아야 했다.
그러니 이곳의 욕은
마음이 흘러넘쳐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말이 먼저 정해지고
마음이 그 말을 따라가야 했던 말
보통의 욕은 우연히 태어나
입에서 입으로 흘러 다녔지만
이곳의 욕 몇몇은
학습 자료에 적히고
지면에 인쇄되어
가르쳐지는 말이 되었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옛말에서 나온
"간나새끼", "에미나이" 같은 낱말들은
원래 그 땅의 자연스러운 사투리였다.
그러나 그 말들이 밖으로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은 방언과 지도된 말을
하나의 같은 얼굴로 기억하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썼던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욕은 맞설 수 없는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목소리라고 했던 문장
그런데 목소리마저
누군가 미리 정해줄 수 있다면
그때 욕은 더 이상
나를 지키는 말이 아니라
나를 빌려 쓰는 말이 된다.
가장 사적이어야 할 분노가
가장 공적인 문장이 될 때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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