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던 손을 내려놓는 저녁

by은파랑

애쓰다.
이 말의 앞자리에 놓인 '애'는
옛말로 창자를 가리켰다.

애가 타다, 애가 끊어지다 하는 말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그러니 애쓴다는 것은
속을 쓴다는 말이었다.
겉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의 힘을
꺼내어 쓰는 일

1908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 실험실.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은
작은 춤추는 생쥐들을 상자 앞에 세웠다.

상자는 두 개였고
한쪽은 밝았고 한쪽은 어두웠다.
어두운 쪽으로 들어가면
약한 전기가 발끝을 스쳤다.

생쥐들은 밝기를 구분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야 했다.

두 사람은 전기의 세기를 바꾸어가며
생쥐들이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쟀다.

쉬운 과제에서는
자극이 셀수록 더 빨리 배웠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에서는 달랐다.
너무 약해도 더디었고
너무 세면 오히려 헤매었다.
가장 잘 배운 것은
중간쯤의 자리에서였다.

훗날 사람들은 이 결과를
이렇게 불렀다.
적당한 긴장이 가장 멀리 간다.

애쓰는 마음에도
알맞은 세기가 있었다.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유능한 사람이어야 하고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매일 아침 속을 한 번 더 조였다.

쉬는 날에도 쉬는 법을 배우려 애썼고
웃는 날에도 더 잘 웃으려 애썼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한 번도 놓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말이 하루를 끌고 갔다.

그러다 어느 저녁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 말고
문득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피로는 몸이 아니라
오래 쥐고 있던 마음에서 올라왔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쓰고 있던 것은
힘이 아니라 속이었다는 것
속을 다 쓰고 나면
쓸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너무 애쓰며 살았다는 말은
내가 게을러졌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나를 몰아세워왔는지를
뒤늦게 알아챈다는 말

활시위도 그렇다.
끝까지 당겨 둔 채로 두면
화살은 날아가지 못하고
활이 먼저 지친다.

팽팽함과 느슨함이
번갈아 찾아올 때
활은 오래 쓸 수 있는 활이 된다.

그래서
요즘 작은 연습을 한다.

해야 할 일을 하나 덜어내고
미뤄도 되는 일 앞에서는
미룰 수 있다고 말해준다.

오늘은 이만큼이면 충분했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여본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손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것만 같다.

그러나 비어 있는 손에
저녁 바람이 와서 앉는다.

애쓰지 않은 자리에도
하루는 조용히 저물고
내일은 어김없이 온다.

신발을 벗고
오래 쥐고 있던 주먹을
하나씩 펴본다.

손바닥에 남은 자국 위로
따뜻한 빛이 천천히 번진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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