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봄, 서울의 서점마다
한 권의 소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야기는 서울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린다.
자식을 만나러 올라온 어머니의 손이
아버지의 손에서 놓여 버린 순간
사람들이 인파에 쓸려 가는 사이
어머니만 홀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가족은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없어진 뒤에야 하나씩 돌아왔다.
손등의 결, 부엌의 소리, 말끝의 온도
잊는다는 말
잊다는 놓아 보낸다는 말인데
놓아 보낸 자리가 오래 비어 있다.
사랑은 한꺼번에 오지만
잊음은 한 겹씩 벗겨진다.
눈 녹듯이가 아니라 서리 걷히듯이
그리움이라는 말
그립다는 그리다에서 왔다고들 한다.
눈앞에 없는 얼굴을 마음에 그려 보는 일이다.
그러니 잊는다는 것은
마음속 그림을 한 획씩 지우는 일
그런데 지우개는 늘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사랑한 시간이 한 계절이었다면
잊는 시간은 몇 해의 겨울이어서
같은 길을 갈 때도 돌아오는 길이 더 멀다.
지나가는 골목의 국 냄새에
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던 저녁
잊었다고 말한 날들이 쌓였는데
이름이 불리면 가슴이 먼저 대답하던
오래 걸리는 작별
그제야 알았다.
잊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은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그만큼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
당신은 묻는다.
언제쯤이면 다 잊히겠느냐
나는 대답 대신
지워지지 않은 한 획을
지우지 않고 가만히 바라본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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