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속 어느 왕이
세공사에게 반지 하나를 청했다.
기쁠 때는 겸손을, 슬플 때는 힘을 주는 문장을 새기라.
세공사는 밤새 고민하다
지혜롭다는 이를 찾아가 물었고
그는 짧은 한 줄을 일러 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왕은 승전의 날 글자를 보고 웃음을 거두었고
패배의 날 글자를 보고 눈물을 거두었다.
지나간다는 말
지나다, 가다.
머물지 않고 옆을 스쳐 길 위로 오른다는 뜻
기쁨은 오래 붙들고 싶어서
쥐면 쥘수록 손바닥에서 식고
슬픔은 얼른 보내고 싶어서 밀수록 되돌아온다.
그러나 둘 다 손님이어서
문을 열면 들어오고
앉았다 가면 다시 문을 나선다.
위로(慰勞)라는 말
慰는 마음을 눌러 다독이는 글자
勞는 애쓴 수고를 알아주는 글자다.
그러니 위로란
아픔을 없애 주는 일이 아니라
애쓰고 있는 마음의 어깨에 손을 얹는 일
슬픔도 지나간다는 말은
슬픔을 가볍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슬픔에게 끝이 있음을 일러 주는 말
기쁨도 지나간다는 말은
기쁨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기쁜 날을 더 오래 바라보게 하는 말
밥알이 모래처럼 씹히던 겨울
웃음이 낯선 옷처럼 어색하던 봄
그때는 아침이 오는 일조차 무거웠으나
어느 날 창가의 햇빛이
어제보다 반 뼘쯤 따뜻해져 있었다.
그것이 지나가는 일
소리 없이, 광고도 없이
마음의 물이 한 눈금씩 빠져나가는 일
그리고 알았다.
오늘의 슬픔이 위로가 되는 까닭은
오늘이 끝내 오늘만의 것이어서였음을
당신은 묻는다
그 말이 정말 위로가 되느냐.
나는 대답 대신
창문을 조금 열어
지나가는 바람이 당신 어깨를 스치게 해 둔다.
은파랑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