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期待).
한자를 하나씩 풀어보면
기약할 기에, 기다릴 대
기약하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오늘 이 마음이 닿을 날을
미리 정해두고 기다리는 일
그러니 기대는
말로 하지 않은 약속이다.
상대는 모르는 채
나 혼자 맺어버린 약속
서운함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날
조용히 찾아오는 손님이다.
손님은 언제나
상대의 문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먼저 두드린다.
서기 100년경,
로마의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에게 짧은 가르침을 남겼다.
일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일이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라.
그러면 마음이 평온할 것이라.
그는 알고 있었다.
내 손안에 있는 것과
내 손 밖에 있는 것을 가르는 일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를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내 손 밖에 있다는 것
생일 아침, 오지 않던 연락 하나에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고
건넨 마음만큼의 말이
돌아오지 않던 저녁에는
혼자서 한참을 서운해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그 사람은 아무것도 어기지 않았다.
나만 혼자
말없는 약속을 세워두고
혼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를 줄이는 일은
마음을 접는 일이 아니었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
꼭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짐을
그의 어깨에서 내려주는 일이었다.
짐이 가벼워진 사람은
더 자유롭게 다가온다.
기대를 줄이니
서운함이 줄었다.
서운함이 줄어드니
다정함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오지 않은 연락 대신
도착한 안부가 눈에 들어오고
바라던 말 대신
건네진 작은 눈빛이 보였다.
기대가 크면
작은 선물도 부족해 보이고
기대가 가벼우면
작은 안부도 선물이 된다.
빈 잔에는
한 방울도 소리가 나지만
가득 찬 잔에는
무엇을 부어도 넘칠 뿐이다.
그래서
마음의 잔을 조금 비워두기로 한다.
누가 무엇을 채워주든
채워주지 않든
나의 하루가 기울지 않도록
그리고 비워둔 그 자리에
오늘은 뜻밖의 햇살이
조용히 들어와 앉는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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