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플로리다 대학교 교실 뒤편
과학교육 연구자 메리 버드 로우는
낡은 녹음기 한 대를 켜 두었다.
교사가 질문을 던지고
아이가 대답하기까지의 시간,
짧은 틈을 재어보고 싶었다.
녹음테이프를 돌려 들어보니
교사가 기다린 시간은
평균 일 초도 되지 않았다.
질문이 허공에 닿기도 전에
교사는 답을 말해버렸고
다른 아이를 지목해 버렸다.
교실은 바빴고
침묵은 어색했고
빈자리는 서둘러 채워졌다.
로우는 교사들에게 한 가지만 부탁했다.
질문을 던지고
속으로 셋까지 세어보라.
삼 초가 지나자
교실이 달라졌다.
대답은 더 길어졌고
더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줄어들었고
"그런데 저는요"라는 말이 늘어났다.
아이들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생각이 입술에 닿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로우는 그것을 기다림의 시간이라 불렀다.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교실에서는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
침묵은 말의 부재가 아니었다.
상대의 마음이 걸어올 길을
비워두는 일이었다.
울먹이는 친구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위로를 꺼내놓았던 저녁
그때 그의 입술은 열리려다 멈췄고
나의 말들은 그 위에 먼저 내려앉았다.
그가 하려던 이야기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어떤 말은
건네는 것보다
건네지 않는 것이 더 깊이 닿는다는 것
침묵해야 할 순간을 아는 사람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들어갈 자리를 아는 사람이다.
악보에도 쉼표가 있다.
쉼표가 없다면
음악은 소음이 된다.
짧은 쉼 덕분에
앞의 선율은 여운이 되고
뒤의 선율은 기다림이 된다.
누군가의 슬픔 곁에서
누군가의 망설임 곁에서
이제 가만히 숨을 고른다.
하나, 둘, 셋.
삼 초의 빈자리로
그 사람의 진짜 말이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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