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옅어지는 것이다

by은파랑

1949년, 신경과학자 도널드 헵은
기억이 어떻게 몸에 새겨지는지를 한 줄로 적었다.
함께 불붙은 신경은 서로 단단히 묶인다.

한 번 새겨진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상처가 오래 남는 까닭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 신경과학자 카림 네이더는
쥐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살피다가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기억은 떠올려질 때마다
잠시 말랑해졌다가
다시 저장된다는 것

그것을 재응고라 불렀다.
같은 기억이 같은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다시 쓰인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상처는 지워지지 않아도
무게는 달라질 수 있었다.
그날의 장면은 그대로여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기 때문이다.

오래 그 일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깨끗이 잊히기를

그러나 잊으려 할수록
상처는 더 또렷하게 돌아왔다.

어느 날 문득
그 일을 떠올리고도
숨이 막히지 않는 나를 만났다.

아프긴 했지만
예전처럼 베이지는 않았다.

오래된 흉터가
비 오는 날에만 희미하게 욱신거리듯
기억도 그렇게
먼 곳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옅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울었고, 쉬었고
몇 번을 다시 일어났다.

옅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살아냈다는 뜻

오늘
그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고
가만히 손끝으로 쓸어본다.

여기에 아픈 날이 있었고
그날을 지나온 내가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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