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슬롯학자 찰스 쿨리는
어린아이들이 무언가를 해내고는
가장 먼저 어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는 것을 기록했다.
아이는 블록을 높이 쌓고도
혼자 기뻐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이 고개를 끄덕여야
비로소 그 일이 자랑이 되었다.
쿨리는 그것을
거울 속의 자아라 불렀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른 사람의 눈빛에 비춰보며 배운다는 뜻
몇 해가 지나
마슬로우도 사람의 욕구를 층층이 그리며
가운데 한 칸에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적어 넣었다.
배고픔이나 안전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
그러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약함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자라는 동안
가장 먼저 배운 방식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잘했다는 한마디를 기다렸다.
말이 없으면
괜찮은 척 돌아섰지만
마음은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소한 칭찬 하나에
하루가 환해지기도 했고
무심한 침묵 하나에
며칠이 흐려지기도 했다.
그런 한심하다 여긴 적도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왜 아직도
눈치를 보느냐.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마음은 고쳐야 할 흠이 아니라
누군가와 닿고 싶다는
오래된 인사였다.
다만 거울이 하나뿐일 때
거울이 흐려지는 날마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거울 하나를 마련해 본다.
누구의 박수도 없는 저녁에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
오늘도 애썼다.
노력은 내가 안다.
인정은 밖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안에서 켜지는 불빛이기도 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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