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찰스 다윈은
우는 사람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눈물에서 쓸모를 찾지 못한 채
눈가 근육이 조일 때 흘러나오는 것이라 적었다.
백 년이 흐른 뒤에야
사람들은 다시 눈물 곁에 앉았다.
울음이 한창일 때 몸은 팽팽하게 당겨졌고
울음이 지나간 뒤 숨은 천천히 풀려갔다.
기분은 잠시 더 가라앉았다가
시간이 지나며 가벼워졌다.
눈물이 슬픔을 지운 것이 아니라
몸이 가장 높은 파도를 지나
잔잔한 물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눈물은 닦아내는 수건이 아니었다.
어질러진 방 한가운데
마음이 앉을자리를 만들어주는 손이었다.
오래 눈물을 삼켰다.
울면 무너질까 봐
울면 멈추지 못할까 봐
그러다 어느 밤
참다 참다 한 번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
숨이 먼저 길어지고
어깨가 천천히 내려앉고
엉킨 말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무엇이 서러웠는지
울고 나서야 또렷해졌고
무엇이 그리웠는지
울고 나서야 이름을 얻었다.
눈물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답을 찾을 만큼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었다.
흘러서 비워지고
비워져서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서 다시 숨을 쉬는 일
울음이 지나간 자리에 앉아
젖은 얼굴 그대로
깊게, 아주 깊게 숨을 쉬어본다.
마음은 그렇게
눈물을 건너
조금씩, 조금씩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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