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무렵, 함곡관의 새벽
푸른 소를 타고 서쪽으로 가던 늙은이를
관문지기 윤희가 붙들어 세웠다.
떠나시기 전에 한 말씀만 남겨 주십시오.
늙은이는 말없이 붓을 들어
오천 자를 적고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그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났으나
사랑이 무엇인지는 길게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말 가운데
이런 문장 하나가 오래 떠돌았다.
깊이 사랑받음은 힘이 되고, 깊이 사랑함은 용기를 준다.
사랑'받다'라는 말
받는다는 것은 두 손을 비워 두는 일
먼저 내려놓아야 담길 수 있는 일
그렇게 담긴 사랑은 몸 안에 내려앉아
눈에 띄지 않는 뿌리가 된다.
바람이 불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된다.
용기(勇氣)
氣는 쌀로 밥을 지을 때 오르던 김
식은 몸을 데우던 한 줄기 따뜻한 숨이었다.
그러니 용기란 큰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데워 둔 숨을
식기 전에 내어 주는 일이다.
받은 사랑은 뿌리가 되어 아래로 내려가고
건넨 사랑은 걸음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뿌리 없는 걸음은 비틀거리고, 걸음 없는 뿌리는 갇힌다.
받아 둔 사랑이 있다.
말없이 건네받은 밥 한 그릇
돌아서는 등 뒤에서 오래 따라오던 눈길
그것이 나를 세워 주던 힘이었음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무너질 때마다 먼저 일으켜 세운 것은 그 뿌리
그리고 이제야 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려 할 때
무서운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의 떨리는 손
그래도 손을 내밀었을 때
세상은 조금 환해졌고
내 안의 겁은 한 뼘 물러났다.
묻는다.
사랑하는 일이 두렵지 않으냐.
대답 대신
식지 않은 숨 한 줄기를
당신 손바닥에 가만히 얹어 둔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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