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캅사

by은파랑

끝없는 모래 언덕 너머
검은 천막들이 바람 속에 서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을 떠돌던
베두인 사람들

낙타와 양 떼를 몰며
우물에서 우물로 길을 옮겼다.

그들의 불가에는
언제나 커다란 솥 하나가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이 요리가
사막 유목민들 솥에서 태어났다 하고

누군가는
남쪽 예멘의 땅속 화덕에서

고기와 쌀을 익히던 요리가
북쪽으로 올라온 것이라 한다.

처음은
모래바람처럼 흐릿하다.

반도는
오래전부터 세상의 길목이었다.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동아프리카의 해안에서

배와 낙타가
향기로운 짐을 싣고 건너왔다.

카다멈과 계피
정향과 사프란

육두구와 후추
월계수 잎

그리고 바짝 말라
검게 쪼그라든 라임

눌러 담는다는 뜻의 말에서
요리 이름이 왔다고 한다.

고기와 쌀과 향신료를
한 솥 안에 꾹꾹 눌러 담아 함께 익힌다 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캅사라 불렀다.

큰 솥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오래 볶는다.

양파가 갈색으로 달게 졸아들면
토마토를 넣어 뭉근하게 풀어낸다.

위에 고기를 올린다.

어린양이거나
낙타이거나
닭이거나

통 카다멈과 계피 조각
정향 몇 알과 월계수 잎을 넣고

검은 라임에 구멍을 내어
함께 떨어뜨린다.

물을 붓고
고기가 뼈에서 스르르 떨어질 때까지

오래
끓인다.

고기를 건져내고
향기로운 국물에

미리 불려둔 길쭉한 쌀을
쏟아 넣는다.

쌀알 하나하나가
국물을 남김없이 머금는다.

사프란을 우린 물 몇 방울을
여기저기 흩뿌리면

하얀 쌀 사이로
노란빛이 번져 나간다.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 가만히 뜸을 들인다.

커다란 둥근 쟁반에
쌀을 산처럼 수북이 쏟는다.

꼭대기에
고기를 올린다.

노릇하게 볶은 아몬드와 잣
통통하게 불은 건포도를
흩뿌린다.

사람들은 바닥에 깐 천 위에
쟁반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는다.

넷이서도
열이서도

하나의 쟁반에서
함께 먹는다.

오른손을 뻗어
쌀을 한 움큼 쥐고

손바닥 안에서
가볍게 뭉쳐 입에 넣는다.

집주인은
가장 좋은 고기를 떼어

손님 앞으로
조용히 밀어준다.

쌀알이 혀 위에서
하나하나 흩어지며 향을 풀어놓는다.

카다멈 달큰한 향이 먼저 피어오르고
계피와 정향이 따뜻하게 뒤를 잇는다.

사이로
검은 라임의 새콤하고 그을린 듯한 맛이

톡 하고
혀끝을 깨운다.

사프란은
꽃처럼 은은하게 번지고

고기는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건포도 단맛과
아몬드 고소함이

한 입마다
작은 기쁨처럼 섞여 든다.

혼례가 있는 날에도
큰 명절에도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온 날에도
쟁반은 가장 먼저 차려진다.

2021년
이 나라 문화부는

이 요리를
지켜야 할 나라의 유산으로 앞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캅사 한 쟁반에는

모래바람 속을 떠돌던 천막의 불씨와
바다와 사막을 건너온 향기로운 짐들과

낯선 이에게도
가장 좋은 고기를 먼저 밀어주던 사막의 환대가

향기롭게, 넉넉하게
한데 눌러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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