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덕

by은파랑

양쯔강 남쪽 옛 도읍 금릉
지금의 난징

골목마다
구운 오리를 짊어진 장수들이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며
오리를 팔러 다녔다.

작고 검은 깃털 오리들이었다.

사람들은 한 번에 더 많이 굽기 위해
화덕 문을 닫아걸고

안의 뜨거운 열기로
오리를 익혀냈다.

1330년
원나라 궁정에서 황제의 음식을 돌보던 한 의원은

양의 위 속에 오리를 넣어 굽는 법을
바카라에 적어 남겼다.

명나라 영락제가
도읍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기던 때

오리 굽는 장인들도
짐을 꾸려 황제를 따라 올라갔다.

1416년
북경의 채소 시장 어귀에

오리와 닭을 굽는
작은 주막 하나가 문을 열었다.

북경에서 처음으로
구운 오리를 내건 가게

사람들은 그 가게를
편의방이라 불렀다.

명나라 가정제 때
곧은 신하 양계성은

나라를 좀먹는 권신을 탄핵하려다
끝내 황제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허기와 울분을 안고
돌아가던 길

골목 어귀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고기 냄새가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작은 주막에 들어앉아
구운 오리 한 접시와 술 한 잔을 청했다.

그는 머지않아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었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가게 이름과 함께 남았다.

청나라 건륭제는
1761년 보름 사이에

구운 오리를 여덟 번이나
상에 올리게 했다고 전한다.

그 무렵 자금성 부엌에서는
문을 닫지 않고 오리를 불 위에 매달아 굽는

새로운 화덕이
생겨났다.

1864년
가금을 사고팔던 양전인이라는 사내가

궁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을 불러 모아
전취덕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궁궐 담장 안에 머물던 불이
비로소 백성들의 골목으로 나왔다.

하얀 깃털 북경 오리를 골라
껍질과 살 사이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팽팽하게 부푼 몸에
끓는 물을 끼얹어 껍질을 오므리고

엿물을 고루 발라
서늘한 바람 속에 매달아 하루를 말린다.

화덕 안에는
대추나무와 배나무, 사과나무 장작이 타오른다.

불 위에
오리를 걸어 매단다.

과일나무의 향긋한 연기가
껍질 속으로 스며들고

기름이 한 방울씩
불꽃 위로 떨어진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면
껍질은 붉은 대추빛으로 반짝이며 팽팽해진다.

요리사는 식탁 곁에 서서
칼을 들고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살을

한 조각 한 조각
얇게 저며낸다.

종잇장처럼 얇은 밀전병을
손바닥에 펼친다.

달고 짭짤한 검은 장을
붓끝처럼 파 한 가닥으로 쓱 바르고

가늘게 채 썬 파와
오이 몇 가닥을 올린다.

위에
오리 한 조각을 얹어 돌돌 만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껍질이 먼저 부서진다.

아래의 얇은 기름층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내리고

과일나무 연기의 은은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살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결결이 풀어진다.

장의 달큰한 짠맛이
기름진 맛을 감싸 안고

파의 알싸함과
오이의 시원함이

무게를
산뜻하게 걷어간다.

껍질만 따로 집어
하얀 설탕에 살짝 찍어 먹기도 한다.

바삭하고 달콤한 한 조각은
녹아 사라지는 사탕 같다.

살을 다 발라낸 뼈는
부엌으로 돌아가

뽀얀 국이 되어
식사의 끝을 맺는다.

1971년
미국의 한 외교관이 몰래 북경을 찾았다.

두 나라가 오래도록
등을 돌리고 있던 시절

중국의 총리는
그와 마주 앉은 점심상에

구운 오리를
올렸다.

그 오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중국의 베이징덕 한 접시에는

남쪽 골목을 누비던 장수들의 발걸음과
황제의 식탁에 오르던 붉은 광택과

과일나무 장작불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던 인내가

바삭하게, 촉촉하게
함께 구워져 있다.

은파랑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은파랑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은파랑은 얘기꾼입니다.

5,2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9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1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7화독일 브라트부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