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하몽

by은파랑

삼천 년 전
지중해를 건너온 페니키아 배들이

이베리아 해안에
닻을 내렸다.

그 무렵부터
이 반도 숲에는

검은 돼지들이
무리 지어 살았다고 전한다.

기원전 160년
로마의 한 원로는 농사에 관한 바카라을 쓰며

돼지다리를 소금에 절이는 법을
꼼꼼히 적어 남겼다.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햄 모양을 새긴 동전이

로마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 다녔다.

이 땅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페르닐이라 불렀다.

스페인 서쪽 넓은 들판에는
참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목초지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 땅을
데에사라 불렀다.

참나무 가지를 알맞게 쳐주면
가을마다 도토리가 넉넉히 열린다.

검은 발굽을 가진 이베리코 돼지들이
참나무 아래를 느긋이 거닌다.

시월에서 이월까지
네 달 동안

돼지들은 떨어진 도토리를 찾아
들판을 누비며 먹는다.

사람들은 계절을
몬타네라라 불렀다.

네 달 사이
돼지 몸은 반 가까이 불어나고

도토리의 기름진 기운이
살결 사이사이로 하얗게 스며든다.

돼지를 잡는 날을
이 땅 사람들은 희생이라 불렀다.

한 식구처럼 기른 짐승에게
예를 갖추었고

어느 한 부분도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

뒷다리를 잘라
굵은 바다 소금 속에 파묻는다.

소금이 핏물을 빨아내고
살을 단단하게 조여 간다.

소금을 씻어낸 다리를
서늘한 곳에 줄지어 매단다!

높은 산 건조장에서
차고 마른 산바람이 다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산맥을 뜻하는 말을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세라노
산의 햄이라 불렀다.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살을 천천히 말리고

여름이 오면
지방이 땀처럼 배어 나와

살코기 속으로
다시 스며든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도토리를 먹은 검은 돼지의 다리는
그보다 더 오랜 해를 기다린다.

이 땅 사람들은
좋은 하몽의 비결을 묻는 이에게

인내, 인내
그리고 인내라 답한다.

잘 익은 다리 하나를
나무 받침대에 단단히 고정한다.

가늘고 긴 칼을
결을 따라 눕혀

종잇장보다 얇게
한 조각씩 저며낸다.

빛이 비쳐 보일 만큼
얇게 썬 조각에는

짙은 루비빛 살코기 사이로
하얀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흐른다!

차갑게 두지 않는다!
실온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한 조각을 혀 위에 올리면
지방이 체온에 먼저 녹아내린다.

살살 녹아 번지는 기름에서
고소한 견과의 향이 피어오른다.

도토리가 남긴
달큰한 흔적이다.

짭짤함이 뒤따라오고
씹을수록 깊은 감칠맛이 올라온다.

살은 부드럽게 풀어지면서도
한 가닥 쫀득함을 남긴다.

삼킨 뒤에도
여운이 오래도록 입안에 머문다.

단단한 만체고 치즈 한 조각
고소한 아몬드 몇 알

바삭하게 구운 빵과
붉은 와인이나 드라이한 셰리 한 잔

그것이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스페인의 하몽 한 조각에는

도토리가 떨어지던 가을 참나무 숲과
산을 넘어온 차고 마른바람과

몇 해를 서두르지 않은
사람들의 기다림이

얇게, 투명하게
함께 숙성되어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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