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게 시선을 맡기는 동안

by은파랑

1963년, 미국 슬롯학자
어빙 고프먼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스치는 순간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한 번 보았고
곧바로 눈을 거두었다.
무시가 아니라, 예의였다.

그는 그것을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 불렀다.
당신이 거기 있음을 안다.
그러나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짧은 인사

몇 해 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몸과 몸 사이의 거리를 쟀다.
사십오 센티미터, 가까운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거리

엘리베이터는 그 선을 지워버린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연인의 거리 안으로 들어선다.

눈은 갈 곳을 잃고
위로, 위로 올라가
불 켜진 숫자 위에 내려앉는다.

3이 4가 되는 동안
숨을 한 번 고르고
5가 6이 되는 동안
어깨를 조금 접는다.

숫자는 누구의 얼굴도 아니어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모두의 시선을 대신 받아주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너무 가까워진 마음 앞에서
괜히 휴대폰 화면을 켜던 순간

나는 무심한 척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조심하고 있었다.
당신의 자리를 밟지 않으려고

당신은 묻는다.
아까 왜 내 눈을 피했느냐

나는 대답 대신
문이 열리는 층을 가만히 가리키며
한 걸음 물러나 당신을 먼저 내보낸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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